“너 요즘 왜 그래?”
나는 거실 소파에 누운 채 니트 조끼를 들썩거리며 물었다. 그녀는 주방 싱크대에서 그릇을 씻고 있었다. 물소리가 요란했다. 내 물음은 물살에 밀려 내려갔다.
“이런 질문은 그만하자.”
그녀의 목소리는 차갑게 식은 커피처럼 떨렸다. 주말 내내 우리는 서로를 긁었다. 나는 그녀의 메모리얼 캔들 사랑을 비웃었고, 그녀는 내 하이볼 잔에 낀 잔털을 들먹였다. 토요일 저녁엔 ‘너네 엄마가 그랬지’라는 말이 튀어나왔고, 일요일 새벽엔 ‘진작 알았어’라는 침묵이 침대를 가르더니 새벽 4시에 남편의 발끝을 차갑게 스쳤다.
달궈진 침묵 사이로
우리가 던진 화살은 단순한 말이 아니었다. 그건 서로의 가장 연약한 부분을 겨눈, 침묵 속의 저격이었다. ‘당신은 내가 원하는 모습이 아니다’는 외침. ‘나도 원하지 않는다’는 반격. 말 한마디가 나무 사이로 날아가면서도 우리의 침실을 노렸다. 목적지가 명확했다. 상대의 존재감을, 상대의 확신을, 상대의 자존심을.
나는 단지 말하고 싶은 걸 말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이미 끝난 싸움이었다. 우리는 주말 내내 미래의 상처를 미리 만들어 놓은 셈이었다.
수요일, 민서의 식탁
민서는 37세, 결혼 9년 차다. 지난 주말 그녀는 남편에게 던졌다.
“솔직히 너랑 있으면 지루해.”
남편은 TV 리모컨을 내려놓고 잠깐 말을 멈췄다. 그 다음날부터 그는 민서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민서는 그 침묵이 두려웠다. 그래서 수요일 저녁 그녀는 남편이 좋아하는 갈비찜을 했다. 뜨거운 냄비를 식탁에 내려놓으며 한마디 했다.
“먹고 싶으면 먹어.”
그날 밤, 남편은 침대에 누워 책을 읽었다. 민서는 조용히 다가가 남편의 손목을 잡았다. 남편은 책을 덮고 불을 껐다. 그리고 아침 7시, 민서는 냉장고 앞에서 남편이 식혀놓은 갈비찜을 그대로 두고 오는 걸 봤다. 한입도 안 먹었다.
금요일, 수진의 시계
수진은 42세, 결혼 15년 차다. 지난 주말 남편에게 말했다.
“내가 너랑 사는 이유를 모르겠어.”
남편은 토요일 아침 골프를 가고 돌아오지 않았다. 일요일 밤 그는 집에 와서 침대에 누웠다. 월요일 아침, 수진은 남편의 시계를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시계는 남편이 생일에 받은 500만 원짜리 로렉스였다. 그리고 수진은 시계 옆에 작은 메모를 남겼다.
시간이 있다면, 우리 다시 시작해볼까?
남편은 시계를 들고 자기 방에 갔다. 그날 밤 수진은 시계를 다시 봤다. 시계는 11시 11분에 멈춰 있었다. 배터리가 나갔다. 남편은 그걸 고치지 않았다. 그 순간 수진은 깨달았다. 시간은 멈췄고, 그들의 대화도 끝났다.
침묵한 복수의 미학
우리는 왜 이렇게 끌리는 걸까? 결혼이라는 금욕의 사막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물을 주지 않는 대신, 서로를 말라가게 한다. 침묵한 복수는 자존심의 마지막 보루다. 말로는 너무 창피해서, 행동으로는 너무 두려워서, 우리는 침묵을 택한다. 그건 마치 상대를 향해 수화기를 내려놓는 것과 같다. 통화는 계속되지만 상대는 듣지 못한다. 우리는 그 안에서 짜릿한 권력을 느낀다.
내가 먼저 말하면 진다. 내가 먼저 물으면 약해진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죽이듯이 조용히, 하지만 확실하게 벌린다.
마지막 질문
주말 내내 던진 화살은 결국 우리의 침실을 꿰뚫었다. 그리고 그녀는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아침마다 한쪽 침대를 차갑게 만들었다. 나는 지금도 그 침묵 속에서 살고 있다. 당신은 지난 주말, 어떤 화살을 던졌는가? 그리고 그 화살이 당신의 자존심을 맞췄는가, 아니면 관계를 맞췄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