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 반응이야.”
진우는 병원 양말이 젖을 느꼈다. 소라는 냉장고에서 꺼낸 태동 사진을 그에게 내밀며 말했다.
진우야, 나는 결혼 안 해. 아기만 낳을게.
차가운 병원 복도, 소라의 미소만은 따뜻했다. 진우의 머릿속은 하얘졌다. 이게 무슨 말이지? 우리는 한 달 전, 서로의 미래에 아무런 이름도 붙이지 않았잖아.
욕망의 해부
그녀는 임신테스트기 두 줄이 나온 순간, 어떤 계산을 끝냈을까. 진우는 아니었다. 그건 확실했다. 소라는 말했다.
너랑 사는 건 재미있었어. 하지만 내가 원한 건 아기야, 결혼식이 아니라고.
남자들은 종종 착각한다. 임신이 곧 ‘우리’라는 미래로 이어진다고. 하지만 어떤 여자들은 아기를 낳는 순간부터 ‘나’라는 영토를 확장한다. 아이에게 주는 첫 선물은, 아빠의 성씨가 아닌 아주 절제된 거리감이다.
사랑이 뭔데, 우리가 평생을 같이 살아야 해?
나는 아기의 엄마가 되고 싶은 거지, 네 아내가 되고 싶은 게 아니야.
미래를 잃어버린 남자들
사례 1 : 재우, 34세
재우는 7년 만에 온애의 연락을 받았다. 회식 뒤풀이에서 술김에 잠깐 겪은 하룻밤이었다. 온애는 떠났고, 재우는 그녀가 다시 나타난 건 딸 ‘연우’라는 이름표를 달고 온 지 3년 만이었다.
아빠, 너무 늦었잖아요?
온애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너는 연우의 아빠 맞아. 그렇지만 우리는 가족이 아니야. 연우는 내 딸이고, 재우 너는 그냥 출생증명서에 있는 이름일 뿐이야.
재우는 허공에 손을 내밀었다. 아버지라는 말은 그의 몸에서 낯선 향기만 풍겼다.
사례 2 : 민철, 31세
민철은 1년째 만나던 ‘연애’를 접었다. 여자친구 하린은 계속해서 임신 가능한 날짜를 물었다. 그러더니 약속 없이 집에 찾아와 한 방에 아이를 만들었다. 민철은 피임을 하지 않은 죄책감에 휩싸였다. 다음 날 아침, 하린은 말했다.
결혼 같은 건 하지 말자. 나도, 너도, 서로 원하는 게 아니잖아.
하린은 임신한 지 8주 만에 사라졌다. SNS에 올린 건 허그백 속 둥근 배 사진 한 장. 민철은 그녀가 낳은 아이의 이름조차 몰랐다. 그저 ‘우리 아이’라는 말이 어색하게 남았다.
왜 우리는 이것에 끌리는가
사회는 여전히 임신을 ‘부부’라는 제도로 가두려 한다. 하지만 어떤 여자들은 그 틀을 깨고, 아기를 ‘단독 주택’ 안에 들여놓는다. 그리고 남자들은 그 단독 주택 앞에 서서, 열쇠를 잃어버린 첫날 밤만 반복한다.
왜 그들은 결혼 안 하고 아이를 낳으려 할까? 어쩌면 그건 가장 확실한 집착일지 모른다. 내 유전자만으로, 내 시간만으로, 내 이름만으로 완성되는 생명. 사랑이 아닌 소유를 낳는 순간. 남자는 필요 없다. 아빠는 필요 없다. 단지 엄마와 엄마의 아기만으로 세계는 충분하다.
남자들은 그래서 두렵다. 아기를 낳지 못하는 자신의 몸, 피임이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공포, 그리고 가장 깊은 두려움. 우리는 사실 아무것도 결정할 권리가 없다는 것. 여자가 뱃속에 품은 미래를, 우리는 말 그대로 ‘품을’ 수밖에 없다.
아직도 당신은 결혼을 꿈꾸는가
당신도 혹시 사랑하는 여자의 뱃속에, 자신의 이름이 새겨지지 않은 아이를 상상해본 적 있는가. 그녀가 돌아서며 말한다.
우리 아기, 당신은 아빠일 뿐이야.
그 한 마디가 당신의 청혼반지를 어디에 묻어버릴지 아직도 그녀는 모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