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심리연구소 사랑과 연애의 심리학

내 침대 대신 밴 안을 택한 그녀, 아직도 그 짐을 버리지 못한 이유

5년째 차 트렁크에 굳게 잠긴 빨간 가방. 그 안엔 우리가 함께 죽이지 못한 과거—케이블 니트 잠옷, 번진 폴라로이드, 그리고 7개월 태아의 초음파 사진—이 숨쉰다. 잠든 사랑의 시체를 차 안에 묻는 장례.

집착이별트라우마금기욕망밴드라이프
내 침대 대신 밴 안을 택한 그녀, 아직도 그 짐을 버리지 못한 이유

"잘 자, 나는 차로."

침대 끝에 앉아 반팔만 걸친 채 담배를 문 그녀가 말했다. 새벽 3시 42분. 우리는 방금 전까지 서로의 숨결이 닿지 않을 만큼 멀리 누워 있었다.

"여기 있으면 너무 따뜻해서 못 자겠어."

그건 핑계였다. 알았다. 그녀는 내가 잠든 뒤 차로 가서 뭔가를 만졌다. 냉장고 위에 있던 빨간 봉투. 내가 지난번에 우연히 만져서는 급히 숨긴 그것.

차문 닫히는 소리가 철컥, 울렸다. 나는 이불을 뒤집어썼다. 그리고 5년째 그녀는 타인의 침대 대신 2003년식 스타렉스 안에서 잔다.


가방 속의 너

그녀의 차 트렁크엔 빨간 기내용 가방 하나가 굳게 잠겨 있다. 지퍼는 녹이 슬었고 손잡이는 끊어진 지 오래다. 몇 번이나 버리려 했지만 매번 손이 떨렸다.

가방 안엔 이런 것들이 있다.

  • 내가 처음 그녀에게 준 크림색 케이블 knit 잠옷
  • 우리가 처음 사귀던 날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얼굴은 번지고 세월이 지나 반만 남았다)
  • 내가 그녀 생일에 써준 카드 — "너랑 같이 늙고 싶어"
  • 그리고 7개월 태아의 초음파 사진

마지막 것은 우리가 함께 본 것이 아니다. 그녀 혼자 병원에 갔다 왔을 때 이미 늦었다고 했다. 나는 화장실에서 바닥에 주저앉아 울었다. 그녀는 침대에 누워 천장만 바라봤다.

그날 이후로 우리는 서로의 몸을 만졌지만 결코 안았던 적이 없다.


실은 둘 다 알고 있었다

차에 가방이 있다는 걸 둘 다 알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봉투 안에 뭘 넣는지 봤고, 그녀는 내가 봤다는 걸 알았다. 그걸 끝까지 말하지 않은 건 서로를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망가진 걸 숨기고 싶어서였다.

며칠 전 동네 편의점에서 마주쳤다. 그녀는 그대로였다. 검은색 후드 입은 채 맥주 한 캔 든 손이 여전히 떨렸다. 나는 그녀를 보며 말했다.

"아직도 그 차에 있어?"

그녀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응, 이제 그게 집이야."

그녀의 차 뒷좌석엔 온갖 생활용품이 널브러져 있었다. 샴푸, 담요, 김밥 한 줄, 그리고 그 빨간 가방. 나는 그걸 가리켰다.

"아직도..."

"못 버리겠어."


동화 같은 이야기 두 개

  1. 민지의 이야기

27살 민지는 3년 전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헤어진 이유는 단순했다. 그녀가 임신했고, 남자친구가 아이를 원하지 않았다. 민지는 혼자 병원에 갔다. 수술 후 받은 작은 보호대와 초음파 사진을 버리지 못했다. 그녀는 그걸 차 안에 넣어두고 3년째 방치했다. 남들은 그저 "그냥 버려"라고 했다. 하지만 민지는 알았다. 그건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그녀가 죽인 시간의 유령이었다.

  1. 재훈의 이야기

재훈은 전 여자친구의 목걸이를 차 안에 보관하고 있다. 금색 작은 열쇠 모양인데, 이젠 녹이 슬어 있다. 그녀는 재훈에게 "이건 우리가 함께 열 수 있는 미래의 열쇠야"라고 말했다. 헤어진 지 5년. 재훈은 이제 다른 사람과 산다. 하지만 그 목걸이는 여전히 차 안 거치대에 걸려 있다. 아내가 몇 번이나 버리라고 했지만 재훈은 그게 단순한 장신구가 아니라 자신이 믿었던 미래의 잔해임을 알고 있었다.


짐이 아닌 시체

우리는 사랑의 시체를 차 안에 묻는다. 잘 버리지 못하는 건 단순한 집착이 아니다. 그건 부고(副考)다. 우리가 함께 죽였거나 죽게 둔 시간, 가능성, 누군가의 미래에 대한 애도.

차 안은 외부와 차단된 공간이어서 가능하다. 문만 닫으면 세상이 멈춘다. 그래서 그곳엔 우리가 견딜 수 없는 진실이 살아 숨 쉰다. 누군가는 빨간 가방에, 누군가는 목걸이에, 누군가는 오래된 사진에.

이건 단순한 보존이 아니다. 이건 장례다. 우리가 차 안에 치른 작은 장례.


당신의 차 안엔 뭐가 있나

차를 세워두고 트렁크를 열어본 적 있는가. 누구도 모르게 간직한 물건들이 그곳에 있다면, 그건 당신이 아직도 살아 있는 과거다.

그리고 아마도 당신은 그걸 버리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건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당신이 아직도 사랑하는, 죽지 못한 시간의 덩어리니까.

차 한 대가 온 신세계인 그녀는 지금도 어딘가에서 스타렉스 안에서 잠든다. 그리고 아마도 우리 모두는, 누구하나 완전히 버리지 못한 무언가를 품은 채 살아간다.

당신이 숨기고 있는 그 물건 — 그게 과연 짐인가, 혹은 당신이 아직도 숨쉬게 하고 싶은 과거인가.

←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