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문장부터 침을 삼켰다
김유진은 정확히 412일째 남편의 손을 거부하고 있다. 아침마다 커피를 타주고, 저녁엔 어깨를 주물러주며 이혼은 고사 투정 한 번 없다. 대신 유진은 남편이 샤워하는 동안 거울 속 자신의 목덜미를 깨물어 본다. 남의 이빨 자국으로.
'어젯밤 나는 네가 옆집 남자랑 하는 걸 들었어.' 거울이 말했다. '그래도 참았지?'
욕망의 해부학
우리가 섹스를 거부할수록 영혼은 역겨운 곡예로 대응한다. 핀란드 연구팀은 6개월 이상 무성애 부부 17쌍의 fMRI를 찍었다. 놀랍게도, 시각적 자극 대신 그들의 전전두엽은 ‘금기 상상’ 부위만이 불타고 있었다. 즉, 자발적 금욕은 오히려 더 더러워진 내면을 키운다.
1. 은밀한 소음
김유진(34)은 7층 복도 끝, 701호에 산다. 그녀가 선택한 약자는 단순하다. 베란다 미닫이를 2cm 열어두는 것. 반대편 702호의 정민수 씨는 매일 새벽 1시 14분쯤 담배를 피운다. 불빛이 번쩍이면 유진은 소파 아래로 기어들어간다. 구멍 하나라도 있으면 옆집의 숨소리를 빨아들일 수 있을 것만 같다.
정민수는 전혀 모른다. 그가 던진 재떨이 뚜껑 소리를, 유진이 어떤 비음 섞인 신음으로 받아들이는지. 그날도 민수는 ‘씨발, 시원하다’ 중얼거렸다. 그 한 마디에 유진의 허벅지 안쪽이 무릎까지 달아올랐다.
2. 제3의 방
박준홍(41) 부부는 아이 대학 등록금 때문에 2년째 자정 이후 불을 끈다. 그는 아내 영주가 코를 골 때마다 옷장 속 노트북을 연다. 검은 화면 위로 눈동자 반사된다. ‘방송 중’ 표시가 켜지면, 준홍은 이어폰을 두 개 꽂는다. 하나는 귀, 하나는 입.
화면 너머의 여자는 닉네임 ‘묘사’다. 랜덤 채팅방에서 우연히 만났고, 그녀는 프로필 사진 대신 어두운 방 실루엣만 올려둔다. 준홍은 문자만 보낸다. 묘사는 그 문자를 소리 내 읽어준다. ‘잠긴 입술이 열리는 소리’ ‘니트 가슴을 긁는 손톱’ ‘숨죽인 비명’. 준홍은 아내의 곁에서 정액을 참는다. 아, 저 여자의 음성이 내 침대 위에 떨어지고 있어.
왜 우리는 낙인을 원하는가
빈 침대는 비어 있지 않다. 그 안에 우리가 감히 말하지 못할 상상이 빼곡하다. 정신과 의사 한석진 박사는 “금욕 상태에서 뇌는 ‘스스로를 더럽힐’ 다른 경로를 찾는다”고 설명한다. 이를 ‘반전적 흥분’이라 부른다. 다시 말해, 우리는 금기를 스스로 만들어야 비로소 욕망이 제자리를 찾는다는 것.
학문적 번역이 싫다면 이렇게 바꿔 말하자. ‘하지 말라’는 표지판이 있어야 우리는 헤드라이트 없이 길을 찾는다. 그래서 유진은 남편의 손을 뿌리치면서 더 강렬해지고, 준홍은 아내 곁에서 낯선 여자의 숨소리에 귀 기울인다. 단 한 번도 맞닿지 않았음에도.
마지막 문장 하나 남겼다
오늘 밤, 당신은 버튼 한 번만 누르면 끝낼 수 있다. 불 꺼진 방에서 스마트폰을 들었다. 채팅방 광고가 뜬다. ‘실제 만남 가능’. 근데, 당신은 정말로 시원해지길 원하는가, 아니면 목이 타들어가는 이 갈증을 오래 곱씹고 싶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