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나 아직 너 사랑해.”
그녀가 나지막이 말했던 건 새벽 2시 47분, 침대 옆 스탠드 불이 흐릿하게 비치던 순간이었다. 나는 눈을 감은 채 대답 대신 숨을 골았다.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온 ‘사랑’이라는 단어는 아무런 무게도 없었다. 사실, 그보다 한 시간 전 눈을 뜬 나는 그녀가 화장실에서 나지막이 속삭이던 이름을 들었다. 정우야. 세 음절이 침대 모서리를 타고 내 귀를 간질였다. 그건, 내 이름이 아니었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넘어선 갈증
우리가 말하는 ‘사랑’은 그저 두려움의 가장 쉬운 변명일 때가 많다. 정우라는 이름이 휴대폰 너머로 건너올 때마다 그녀의 눈빛은 사냥개처럼 반짝였다. 나는 그 눈빛이 내가 아닌 누군가에게 향한다는 걸 알면서도,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가 천장을 떨어뜨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눈을 감았다.
나는 정체 모를 갈증에 시달렸다. 단순히 섹스를 원하는 게 아니었다. 잃을까 봐 겁나서, 손가락 끝으로라도 더 붙잡고 싶어서 온몸이 화농처럼 가렵던 순간들.
그녀가 남편이라는 울타리 안에 있을 때마다, 나는 그 울타리가 얼마나 허술한지를 증명하고 싶었다. 사랑한다는 말로 닫힌 문을 두드리는 대신, 다른 열쇠를 찾는 일은 결국 내가 가장 두려워하던 방식이었다.
그녀가 정우를 부르는 밤
서울 강남구 대치동, 34층 아파트 809호. 우리 부부의 침실은 밤마다 시커먼 정글처럼 변했다.
"오늘도 야근이래." 그녀가 말했다. 스마트폰 화면에선 ‘정우(삼성전자)’라는 이름이 7번이나 떠올랐다. 나는 그녀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리는 걸 놓치지 않았다. 그건 결코 동료에게 보내는 시선이 아니었다.
새벽 1시 12분, 그녀는 조용히 일어나 거실로 나갔다. 나는 뒤를 밟았다. 거실 소파 뒤편, 그녀는 목소리를 낮춰 속삭였다.
정우야, 너 없으면 못 자.
나 오늘도 그만 끊을까 했는데,
네가 웃는 게 계속 생각나.
그 말들이 칼날처럼 내 가슴을 가르던 순간, 나는 곧장 그녀를 뒤에서 껴안았다. 그녀는 놀라 휴대폰을 떨어뜨렸고, 화면 속 정우의 프로필 사진이 우리 창밖 도시를 향해 미소 지었다.
그날 이후로 우리는 서로를 마주보지 못했다. 눈을 마주치면, 누가 먼저 ‘사랑한다’라고 말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두 번째 사례, 인천 부평구 30대 주부 이수진. 그녀는 결혼 9년 차 남편 김현수에게 매일 밤 똑같은 말을 건넨다.
"나, 오늘도 사랑해."
하지만 그녀의 다이어리에는 2023년 4월 7일 이라는 날짜에 이런 기록이 남겨져 있다.
그가 돌아오지 않는 새벽, 나는 정우를 떠올렸다. 눈을 감으면 그의 숨결이 내 귀에 닿았다. 김현수는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나는 그를 사랑했던 게 아니라, 사랑한다고 말했던 게 더 기억에 남는다.
금기의 단맛, 결국은 허기
사랑이라는 말이 배신을 감당할 수 없는 건 단순한 언어의 한계 때문이 아니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마치 방패처럼 들고, 칼날 같은 진실을 막으려 하지만, 그 방패는 이미 내부에서 갈라져 있었다.
사람들은 종종 ‘사랑은 믿음’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믿음은 결국 허기였다. 정우의 이름이 떠오를 때마다 내 몸은 굶주렸다. 사랑한다는 말로는 결코 채울 수 없는, 음습한 갈증. 그건 욕망이 아니라, 욕망이 불타고 난 재더미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였다.
우리는 결혼이라는 이름 아래 서로를 속박한다고 믿지만, 사실은 서로를 독점하고 싶었다. 독점은 끝없는 불안의 다른 이름이었고, 그 불안은 또 다른 정우를 계속 창조했다.
당신의 침대 옆엔 누가 누워있나
사랑이라는 말이 배신을 감당할 수 없다는 걸 깨닫는 순간,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는가.
당신이 오늘 밤 “사랑해”라고 말하는 그 입술은, 과연 그 말을 믿을 수 있는 곳에 머물러 있나. 아니면, 이미 침대 옆에 누군가의 이름을 두고 왔나.
사랑은 결국 우리가 뿌린 거짓말들이 어떤 열매를 맺느냐에 대한 질문일 뿐이다. 그리고 그 열매는 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