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해, 너랑 누워 있는 게 숨 막혀.”
민재는 누워 있던 침대 가장자리로 몸을 끌어당기며 말했다. 희연은 그 한마디를 지난 7년간 반복해서 되새긴다. 아침에 눈 떠도, 저녁에 불 꺼도, 서로의 숨소리만 가득한 그 침대 위에서.
뜨거웠던 첫눈, 차가워진 침대
가장 뜨거웠던 순간은 단연 신혼 밤이었다. 민재는 희연의 발가락 하나하나를 입으로 끌어올렸다. 숨이 닿을 때마다 떨리는 허벅지, 허공에 떠 있던 팔이 남펵의 어깨를 붙잡고 미끄러지던 순간이 생생하다.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오늘 회의가 늦었다.” “내일 먼저 출근해야 해.” “아, 목이 또 뻣뻣하네.”
농담처럼 흘려버리는 대답들이 점차 굳어서, 희연은 혼자서 이불을 끌어안고 잠들었다. 민재는 목배게 두 개를 끼고 소파에서 TV를 보다 잠들었다. 처음엔 그저 요통이라고, 스트레스라고, 희연이 아무에게도 말 못한 그런 핑계들을 스스로 엮었다.
‘내가 뭘 잘못했을까.’ 희연은 침대 시트 냄새를 맡으며 생각했다. 민재 냄새가 아니었다.
숨겨진 셔츠 냄새
정확히 2년 3개월째. 희연은 세탁 바구니에 꼭꼭 박혀 있던 민재의 셔츠를 꺼냈다. 민재는 흰 셔츠를 좋아했다. 늘 깔끔하다고 했다. 그런데 그날 셔츠 옷깃 안쪽에 붙은 자국이 있었다.
분홍빛 립스틱 자국.
아니, 립스틱이라고 하기엔 너무 희미했다. 그저 번들거리는 기름기만 남았을 뿐. 희연은 셔츠를 코앞으로 가져다 댔다. 향수 냄새, 아니면 샴푸 냄새. 그렇다고 해도 너무 달콤했다. 이 향기를 희연은 단 한 번도 민재에게서 맡아본 적이 없었다.
그 순간, 희연은 무언가 깨달았다. ‘그는 나와의 잠자리가 아니라, 그 향기와 잠들고 싶어 하는 거구나.’
윤정의 손가락
사실 그녀의 이름은 윤정이었다. 사내 인트라넷에 등록된 이름은 김윤정, 27세, 총무부서 신입이었다. 희연은 민재가 늦게 들어온 밤, 유리창에 비친 민재의 카톡 화면을 흘끗 보았다.
민재: 오늘도 고마워. 너랑 있으면 숨통이 트여 윤정: ㅎㅎ 민재님 덕분에 저도 오늘 마음이 편해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침대는 점점 더 차가워졌다. 희연은 이불을 꽉 쥐었다. 민재는 소파에서 코를 골며 잠들어 있었다. 그는 희연에게서 멀어지려고 발버둥쳤고, 희연은 그게 단순한 스트레스인 줄 알았다.
‘아니, 그냥 싫증난 거야. 나한테서 벗어나고 싶은 거야.’
7년 만의 진실
그리고 드디어, 7년 만에. 민재는 퇴근길에 사고를 냈다. 가벼운 접촉사고였지만 차는 폐차 수준이었다. 희연은 병원 응급실로 달려갔다. 민재는 멍한 얼굴로 희연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혼자 자는 게 편해.”
희연은 실눈을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민재는 계속했다.
“희연이 옆에 있으면, 숨이 막혀. 너무 잘 알겠어. 너무 가까워서… 나를 다 아는 것 같아서.”
그녀는 당황했다. 왜냐하면 그건 단순한 외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민재가 숨기던 건 ‘윤정’이라는 사람도, ‘립스틱 자국’도 아니었다.
욕망의 공백
민재가 사실은 7년 전부터 ‘성적 무감동증’을 겪고 있었다. 처음엔 의사에게서 들은 병명마저도 낯설었다. 그는 희연에게 닿을 때마다 자신이 점점 ‘작아지는’ 느낌을 받았다. 희연의 숨결, 희연의 눈빛, 희연의 몸짓은 너무 잘 알려져 있어서, 도리어 새로운 자극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윤정’이라는 관계를 만들었다. 단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단지 업무용 메신저로만 대화한 동료. 민재는 윤정과 대화하며 점점 더 자신이 ‘살아 있다’고 느꼈다. 순수한 호기심. 그것이 민재를 지탱했다.
‘나는 희연이 아닌, 희연의 공백 속에서 욕망을 느끼고 있었어.’
우리가 왜 이 끌림에 굴복하는가
아무 말 없이, 희연은 병실 문을 닫았다. 그리고 말했다.
“그럼 나도.”
민재는 눈을 희번덕거렸다. 희연은 계속했다.
“나도, 누군가를 가질 수 있을까. 아니, 가질 수 없다 해도, 상상만이라도. 너랑 잘 때 숨 막히는 사람도 있겠지. 나도 가끔은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
그 말 한마디에 민재는 숨죽였다. 희연은 조용히 웃었다. ‘우리는 서로의 틈을 메우려고 끊임없이 남을 찾고, 결국 그 틈은 더 깊어진다.’
당신의 침대는 따뜻한가
그날 이후 민재는 퇴원했다. 둘은 여전히 같은 침대에서 잔다. 하지만 이불 속에서 서로의 발가락이 스치지 않는다. 희연은 이제 민재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단 한 가지 질문만 남았다.
당신은 지금, 누가 없는 공간에서 가장 뜨거운 욕망을 품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