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에 젖은 손바닥이 이불 속으로 미끄러졌다. 희수의 옆구리를 스친 손끝은 식어 있었고, 민재의 숨결은 여전히 뜨거웠다.
“오늘은 안 돼.”
순간, 침대는 금방이라도 뒤틀릴 것처럼 삐걱였다. 민재의 손이 멈칫하더니 천천히 시트를 따라 내려갔다. 손등이 살아 있는 쇳덩어리처럼 무거웠고, 더듬이 잃은 갑각류처럼 맥없이 주저앉았다. 손등을 타고 흐르는 냉기는 희수의 허벅지 위로 스며들었다. 에어컨 바람이 아니었다. 민재의 체온이 빠르게 식고 있었다.
희수는 숨을 졸랐다. 목덜미에 차오르는 떨림이 어깨를 타고 내려가 손끝까지 번쩍였다. 민재의 숨소리는 점점 굵어졌다. 아니, 숨 자체가 굵어진 게 아니라 숨이 가시는 소리가 커졌다. 한 입 깊게 들이마신 공기가 폐 한복판에 쇳조각처럼 박혀서, 거기서 쉬 나오지 못하는 듯했다.
침실 공기는 끈적했다. 희수의 피부에서 풍겨 나오는 레몬향 바디워셔 냄새가, 민재의 담배 냄새와 뒤엉켜서 병풍처럼 침대 위로 드리웠다. 그 냄새 속에선 유리창틀에 낀 야외 공기도, 집 안 가습기에서 올라오는 물안개도 제대로 들어올 틈이 없었다.
민재는 천장을 응시했다. 희수는 민재의 눈길을 한참이나 따라 올라갔다. 조명 스위치 주변에 낀 모기의 배설물들이, 어둠 속에서도 더러운 흔적을 드러내고 있었다. 바로 그때, 희수는 민재의 왼손 새끼손가락이 살짝 들렸다는 걸 알아챘다.
그 손가락은 지난 7년 동안 희수의 속옷 끈을 쓸어올리고, 가슴 아래 볼록한 곳을 톡톡 두드리며, 그리고 희수가 눈을 감으면 항상 먼저 그녀의 목덜미를 찾아낸 손가락이었다.
오늘은 그 손가락이 희수의 몸 위를 스치지도, 그녀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지도 않았다. 단지 수건으로 닦아낸 듯한 허공 위를 떠돌다가, 이내 이불 속 깊은 곳으로 사라졌다.
희수는 민재의 손등 위 힘줄 하나하나를 떠올렸다. 그 힘줄이 팽팽해지면, 민재의 손바닥이 희수의 허리를 조심스럽게 휘감았다. 그 힘줄이 느슨해지면, 민재는 희수의 뺨에 입을 맞추고 “피곤해?” 하고 속삭였다. 지금 그 힘줄은, 백색 LED에 비친 조명 아래서 투명하게 드러나 있었다. 힘줄은 얼음장 속을 항해하는 뱃줄기처럼, 희수의 몸에 닿지 못하고, 그녀의 욕망에도 닿지 못했다.
침대 끝에서 희수의 발가락이 움직였다. 발가락 하나하나가 민재의 정강이를 살짝 스쳤다. 그러나 그것이 접촉이라기보다는, 거리를 확인하는 실험에 가까웠다. 민재의 다리는 단단했지만, 희수의 발가락이 닿자마자 살짝 떨렸다. 그 떨림은 고작 0.2초였지만, 7년 만에 처음 맞닿은 거절의 전기였다.
“…오늘은 안 돼.”
희수는 거의 속삭였다. 목끝에 걸린 말이 다시 아래로 내려가 버릴까 봐, 그래서 다시 돌이킬 수 없는 말이 되어버릴까 봐, 그녀는 입술을 꼭 다물었다. 그러나 말은 이미 태어났다. 말은 이미 침실 공기 속을 휘저으며, 민재의 가슴 위에 날카로운 화살처럼 꽂혔다.
민재는 잠시 눈을 감았다. 눈꺼풀이 닿는 순간, 희수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차가운 레몬 향기가 코끝을 찔렀다. 그 향기 속에는 희수의 피부, 희수의 숨결, 그리고 희수가 민재에게 마지막으로 건넨 우리의 끝이 시작되는 신호가 담겨 있었다.
민재는 천천히 눈을 떴다. 눈동자에는 아직도 희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 눈동자는, 동시에 희수를 지우려는 흔들림도 담고 있었다. 민재는 천장에서 눈길을 내리지 않았다. 그는 희수를 바라보지 않았다. 그는 희수의 몸 위에서 떠오르는 자신의 욕망을 바라보지 않았다.
희수는 민재의 눈길을 피했다. 그녀는 민재의 손등 위 힘줄만 바라보았다. 그 힘줄이 다시 팽팽해지지 않기를, 그 힘줄이 다시 그녀의 몸 위로 올라오지 않기를, 그녀는 속으로 빌었다.
침대 위로 검은색 실타래 하나가 떠다녔다. 그 실타래는 민재의 머리카락이었다. 민재의 머리카락은 희수의 뺨 위로 살며시 내려앉았다. 그러나 희수는 머리를 돌렸다. 민재의 머리카락은 희수의 뺨을 스치고, 곧장 침대 옆 테이블 위 시계로 날아갔다.
시계는 새벽 1시 17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1시 17분, 7년 전 이들의 첫날밤을 기억하는 시간이었다. 그날 밤 민재는 희수의 손을 꼭 잡으며 “내일도 이렇게 옆에 있을게”라고 말했다. 그날 밤 희수는 민재의 손을 꼭 잡으며 “그럼 모레는 어때?” 하고 웃었다.
지금 그 시계는 1시 17분을 가리키며, 7년 만에 처음 맞닿은 거절의 시간을 기록하고 있었다.
민재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의 등이 희수를 향했다. 등은 넓었지만, 더 이상 희수를 품을 수 없는 벽이 되어 있었다. 희수는 민재의 등을 바라보았다. 그 등은 희수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희수의 손은 떨렸다. 그녀의 손은 민재의 등 위를 떠도는 유령이 되어 버렸다.
침대 아래로 민재의 왼손이 내려갔다. 손은 이불 속 깊은 곳으로 사라졌다. 손은 희수의 몸 위를 스치지 않았다. 손은 희수의 욕망 위를 스치지 않았다. 손은 단지 허공 위를 떠돌다가, 이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희수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녀의 등이 민재를 향했다. 등은 좁았지만, 더 이상 민재에게 열려 있지 않은 문이 되어 있었다. 희수는 민재의 숨소리를 들었다. 민재의 숨소리는 침실 공기 위를 떠도는 작은 파도였다. 그러나 그 파도는 희수의 몸에 닿지 않았다.
침대 위로 조용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침묵은 희수와 민재 사이를 가득 채웠다. 침묵은 7년 만에 처음 맞닿은 거절의 마침표였다.
그날 밤, 침대 위에서 희수는 민재의 손이 내려간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곳에는 희수의 몸도, 민재의 욕망도 없었다. 그곳에는 7년 만에 처음 맞닿은 거절의 공허함만이 있었다.
희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눈을 감는 순간, 민재의 손이 다시 올라올까 봐, 민재의 손이 다시 그녀의 몸 위를 휘저을까 봐, 그녀는 속으로 빌었다.
그러나 민재의 손은 다시 올라오지 않았다. 민재의 손은 허공 위를 떠돌다가, 이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침대 옆 희수의 손은 떨렸다. 그녀의 손은 민재의 손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민재의 손은 다시 올라오지 않았다. 민재의 손은 7년 만에 처음 맞닿은 거절의 끝에서, 영원히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