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아가 울며 무릎을 꿇는 순간, 나는 속으로 오르가슴을 느꼈다.
눈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내 귀에선 마치 샴페인 코르크가 터지는 것 같았다. 아래층 베란다에서 벌어지는 소리, 아파트 1층 현관 앞 풀밭에 무릎 꿇은 채아의 그림자. 나는 4층 난간에 몸을 숨긴 채 숨을 삼켰다. 손등으로 입을 막았다. 숨이 새나올까 두려웠다. 왜냐고? 지금 이 순간, 가슴 한쪽이 뜨거워지고 있었으니까.
‘그래, 더 크게 울어. 더 화려하게 부서져 봐.’
유리창 너머, 첫 맛
초등학교 1학년 봄. 놀이터 옆 양계장 담장. 학급 애들이 모여 선다. 숯불 냄새 섞인 하늘 아래, 한 살 어린 형이 동생을 끌고 왔다. 형은 오리 주둥이를 잡아 뜯으려 하고, 동생은 깃털만 뽑아 바람에 날린다. 병아리들이 죽어간다. 나는 그때 뒤에 숨어 있었다. 숨 죽이고, 입 떨리고, 몸이 간질간질했다. 아무도 나를 못 봤지만, 나는 스스로를 들켰다는 것처럼 심장이 터질 듯했다.
아무도 나를 못 봤다. 하지만 나는 봤다. 그리고 처음으로 맛봤다.
그 이튿날, 담임은 학급 앞에서 그날의 광경을 언급했다. 아이들 눈에서는 연민이 떠올랐지만, 나는 그 연민이 너무 멋져서 또다시 속이 끓어올랐다. 누군가의 고통을 눈앞에서 본다는 건, TV 속 드라마보다 선명한 실시간 소리였다. 내가 거기에 서 있다는 사실, 내가 말없이 그것을 소비한다는 사실이 자꾸만 짜릿했다.
꿀잼이라 불린 방과 후
4학년, 방과 후 학교. “오늘도 갈래?” 진우가 속삭였다. 우리에겐 비밀 규칙이 있었다. ‘꿀잼’은 누가 눈물 흘리느냐, 누가 잘못 걸리느냐를 두고 돌아가는 술래잡기. 술래는 항상 ‘죄 없는 사람’이 된다. 우리는 교실 뒷문으로 살금살금 들어가, 누군가의 필통을 숨기거나 연필을 부러뜨린다. 다음날 화가 난 아이가 벌레처럼 우글거리며 울면, 우리는 속에서 꿀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그날은 희진이 차례였다. 희진은 집이 가난해서, 웃옷을 두 벌만 갈아입는다는 걸 우리가 알고 있었다. 진우가 희진의 가장 깨끗한 옷을 도둑질했다. 장롱 위에 올려놓고, 과자 부스러기를 뿌렸다. 개미가 올라가, 새까만 얼룩을 그렸다. 희진이 울먹이며 “엄마가…” 하고 말할 때, 난 뒤돌아 교실 문을 닫았다. 철컥, 소리가 너무 커서 혼났지만, 그 순간 심장이 터질 듯 높아졌다. 진우와 나는 눈 맞춤으로 웃었다. 이건 ‘게임’이 아니었다. 우리만의 성스러운 의식이었다.
우리는 신이 되었다. 누군가의 운명을 뒤흔들 수 있는 힘을 가진, 새까만 신이 되었다.
왜 난, 남의 고통이 달콤했을까
심리학자 키에르케고르는 ‘공포의 매력’을 말했다. 타인의 고통은 나를 안전지대에 둔 채, 동시에 나를 소름 끼치게 한다. 나는 그때마다 **‘내가 아니라서 다행이야’**라는 죄책감과 **‘그 고통의 한복판에 내가 있었다면’**이라는 상상을 동시에 끌어안았다. 나는 고통을 먹고 성장했다.
아버지는 늘 말했다. “사람이 아프면 네가 도와야지.” 하지만 아버지의 말은 허공에 떠돌았다. 유리창 너머에서 나는 **‘고통을 더 크게 만드는 법’**을 터득했다. 고통은 나를 감싸는 담요였다. 나는 그 안에서만 숨통을 트었다.
심리결핍.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나는 사실 누군가의 눈물이 나의 눈물이 되어줄 거라는 믿음, 혹은 눈물 한 방울로 내 마음이 녹을 거란 기대를 간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기대는 번번이 사탕처럼 단맛만 남기고 사라졌다.
아직도 떨리는 당신의 손목
지난주, 지하철 2호선. 한 여고생이 전화기 너머 엄마에게 울먹이며 말한다. 엄마, 나 진짜 힘들어… 선생님이… 나는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눈물이 내 뺨에 닿을 것처럼 느껴졌다. 스마트폰 화면이 흔들렸다. 나는 그녀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사실만으로, 다시 가슴이 간질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화를 냈다. 나 자신에게. ‘당신은 아직도 그때의 꼬마 애인가.’
나는 도망쳤다. 그녀의 눈물이 내 안으로 들어오기 전에, 나는 조용히 도망쳤다.
내가 배운 건 단 하나다. 고통은 내가 아닌 다른 곳에 있을 때만 아름답다. 그것이 내 안으로 들어오면, 나는 조용히 도망친다. 그리고 다시 창밖을 내려다본다.
당신은 지금도, 그 누군가의 눈물을 보며 미소 짓고 있지는 않나요? 고개를 돌리지 못한 채, 손바닥에 가려진 아주 작은, 불안한 반짝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