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심리연구소 사랑과 연애의 심리학

그날 밤, 그는 내 목덜미에 남의 향기를 맡았다

영원을 맹세했던 남자가 떠난 뒤, 나는 그의 절망 속에서 비로소 나의 욕망을 보았다. 목덜미에 남은 낯선 향기, 끝나지 않은 사랑의 잔혹한 여운.

결별욕망배신감각17금

그날 밤, 그는 내 목덜미에 남의 향기를 맡았다. 담배, 페더민트, 그리고 피맥 끝에서 우러나는 쓴맛이 뒤섞인 기억은 투명했다. 우리는 아직 헤어지지 않았는데, 이미 끝난 사랑의 잔향이었다.

그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비틀거리는 숨소리는 고함이었다. 목덜미의 피부가 태워지는 듯했다. 나는 눈을 감았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나는 또 다른 입술을 떠올렸다. 강남 뒷골목 술집에서 만난 남자의 입술. 그가 내 귀에 속삭였다.

“너, 사랑하는 사람 있어?”

나는 대답 대신 그의 손등에 이빨 자국을 남겼다. 짧은 순간, 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좋았다.


우리는 여전히 같은 침대에 누워 있었다. 하지만 서로의 몸은 외계인처럼 멀었다. 그는 말했다.

“나는 너밖에 없다고 결심했어. 네가 없으면 숨도 못 쉬겠다고.”

나는 이불 끝을 움켜쥐었다. 결심이란 말이 가시처럼 가슴에 박혔다. 나는 결심 따윈 한 적이 없다. 그냥 누군가의 피부, 누군가의 숨결이 필요했을 뿐이다.

그가 내 눈을 마주쳤다. 검은 눈동자에 불꽃이 일렁였다.

“근데 넌 나 말고도 누군가를 더 보고 있잖아.”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내가 원한 건 결코 ‘한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늘 ‘다음 사람’을 원했다. 떨리는 손끝으로 나는 내일 밤을 떠올렸다. 홍대 클럽에서 마주칠 낯선 입맞춤을.


문이 닫히는 소리가 울렸다. 그가 떠났다. 방 안에 멍청한 정적만 남았다. 나는 침대 옆 탁자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첫 모금에서 눈물이 났다. 뜨거운 연기가 폐 깊숙이 파고들었다. 나는 그의 절망 속에서 비로소 나의 욕망을 보았다.


“넌 대체 무얼 원하는 거야?”

그가 물었던 말이 귓전을 맴돌았다. 나는 몰랐다. 다만, 누군가의 눈동자에서 나를 놓치는 순간을 보고 싶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계속해서 다른 사람을 찾았다. 똑같은 눈매, 똑같은 목소리, 똑같은 손끝. 그러나 똑같지 않은 욕망.


한 달 후, 그는 메시지를 남겼다.

“나는 아직도 너의 목덜미에서 그 향기를 맡는다. 담배, 페더민트, 그리고 타인의 피.”

나는 답장을 쓰다 말았다. 화면 위로 내가 쓴 말들이 죄인처럼 떠다녔다.

미안해. 나는 너를 떠나는 순간에도 너를 원하고 있었을지도 몰라.


지금도 가끔, 목욕탕에서 뜨거운 물을 맞을 때면 그날 밤이 되살아난다. 그가 남긴 말 한마디, 그리고 나를 떠나지 못하게 만든 욕망의 저편. 나는 아직도 한 사람을 원한 적이 없다. 다만, 누군가의 결여 위에서만 존재할 뿐이다.


우리는 서로의 결여를 채우기 위해 만났다가, 결국 서로의 결여만 남긴 채 헤어졌다.

문득, 그가 떠난 뒤 우연히 마주친 남자가 있었다. 그는 내 눈을 보더니 미소 지었다.

“눈이 슬퍼요.”

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 그건 눈물이 아니야. 그냥 너를 놓치는 연습 중이거든.”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계속했다.

“사랑은 영원한 게 아니라, 영원히 놓치는 연습이야.”

그날 밤, 나는 또 다른 낯선 키스를 받았다. 그의 입술은 달콤했다. 하지만 그의 눈동자는 나를 원했다. 나는 그 순간, 그를 떠올렸다. 평생 나만 원하기로 결심했던 남자.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단 한 사람의 욕망이 얼마나 잔인한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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