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실 문을 밀어 열자마자 머릿속이 울렸다.
어젯밤 민재의 숨결이 닿았던 내 쇄골, 아직도 거기에 머물고 있는 것 같았다. 흰 셔츠 칼라를 꼭 여미는데, 동료들 눈이 번쩍였다.
그의 손끝이 머문 곳
"여기 뭐 묻었어?" 점심 메뉴 고르는 사이 옆자리 수진이 내 목을 가리켰다.
화장실 거울에 비친 작은 붉은 반점. 키스마크였다. 민재가 마지막에 힘주어 빨았던 자리. 그가 내 안에 남긴 서명.
어째서 아침 세 시간이 지났는데도 이건 사라지지 않는걸까. 아니, 없어지면 안 될까.
욕망의 해부
사실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단지 회식 뒤,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의 팔이 내 허리를 스쳤을 뿐. 그러나 민재의 목 뒤에서 풍기는 페로몬, 한 시간 넘게 뒤엉킨 숨소리의 느낌은 낮의 논리로 잘라낼 수 없는 무게였다.
잔상이란 단순한 기억이 아니었다.
- 그의 손등에 낀 나의 습기
- 침대 끝에서 서로를 떼어놓지 못해 뒤틀린 시트
- 새벽 두 시, 불 꺼진 방에 들던 우리의 첫번째 침묵
모든 감각은 피부 저편에 아직 살아 있었다.
사례 1: 지훈과 나의 47번째 비밀
지난 겨울, 인턴 시절 나는 지훈 팀장과 47일간 비밀연애를 했다.
그러나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믿었다.
회의실에서 서로 발가락으로 살짝 건드리기.
주차장 P1에서 5분 뒤따라 나오기.
엘리베이터 안에서 서로의 가방끈을 말없이 매만지기.
그렇게 47일. 지훈이 퇴사하는 날, 나는 그와 단 한 번도 키스해본 적 없다고 우겼다. 그러나 우리의 피부는 서로를 외웠다. 내 손바닥에는 그의 넥타이 매듭의 느낌이, 지훈의 손등에는 나의 생리불순 약 냄새가 잔상처럼 남았다.
퇴사 후 3년. 지훈은 결혼했고, 나는 아무도 모르게 그의 시계를 아직 간직했다. 그날 밤 엘리베이터에서 그가 벗어준 시계. 시곗줄에 묻은 냄새가 사라지지 않아 나는 매일 맡으며 47일을 다시 산다.
사례 2: 유리와 나의 비상구
유리는 다른 부서 상무였다. 어느 금요일 저녁, 화재훈련 끝나고 비상구 계단에서 마주쳤다.
우리는 소방차 사이렌 소리에 웃었다가 갑자기 입을 맞췄다. 11층에서 1층까지, 78개의 계단 난간을 내려오며 6번의 키스를 나눴다.
그때부터 유리는 매주 금요일 저녁 7시, 비상구에서 나를 기다렸다. 3개월, 12번의 미팅. 우리는 서로의 이름도 부르지 않았다. 계단 끝에선 그저 "다음 주에 봐" 한마디만.
그러나 그날 유리는 결혼 발표를 했다. "다음 주에 봐" 대신 "이제 그만"이었다. 나는 그날 이후 계단을 걷지 못했다. 발목이 기억했다. 12번의 입맞춤이 쌓인 무게를.
왜 우리는 이것에 끌리는가
신경과학자들은 말한다. 키스 한 번이 뇌의 도파민을 20% 높인다고. 하지만 그들이 모르는 건, 잔상은 도파민이 아닌 죄책감의 화학물질이라는 것.
우리는 금기를 밟으며 동시에 그 자리에 발을 떼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 순간만큼은 진짜로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회계팀 민재, 팀장 지훈, 상무 유리—그들은 낮의 이름이었다. 밤에는 그저 뜨거운 숨결일 뿐.
집착은 사실 기억의 반작용이다. 우리는 잔상을 지우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우리가 아니었던 자신을 만났기에 헤어질 수 없다.
네가 남긴 자국은 아침마다 흐려지지 않는다
점심을 먹으러 나서며 다시 거울을 봤다. 키스마크는 이미 옅어졌다. 그러나 나는 알았다. 그 자리가 아물면 나도 같이 사라질 거라는 것을.
회의실로 돌아가는 길, 민재가 복도 끝에 서 있었다. 우리는 눈 한번 마주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느꼈다. 그의 시선이 내 쇄골에 닿는 느낌. 아직도 젖어 있는 느낌.
오늘 밤에도, 그리고 모레 아침에도, 나는 이 잔상을 떨쳐낼 수 있을까. 아니, 나는 정말로 그걸 원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