훅(Hook)
문손잡이를 돌렸을 때 아직도 그녀의 향이 남아 있었다. 담배 맛이 아니라, 그녀가 타고다니던 택시 뒷좌석에 배어 있던 가죽과 달달한 향수가 뒤섞인 냄새. 문을 닫는 순간, 평소 같으면 핸드폰이 울려야 할 시간이었다. 아직도 23:41. 언제나 마지막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리자마자 '도착했어?'라는 안부가 찍혔던 그 시각.
이젠 침묵뿐이다. 3개월째.
시든 푸시 알림들이 말해준다
카톡방은 뮤트 상태, 인스타그램은 잠금. 연락 두절 후 며칠 뒤 그녀가 올린 첫 스토리—불꽃놀이 사진 한 장, 그 아래 하트 이모티콘 딸랑 하나. 나를 위한 건지, 다른 누군가를 위린지 모를 일. 그래도 손가락은 저절로 두 번 탭했다. 꿈처럼 사라진 하트, 남는 건 이미 늦었다는 알림뿐.
그날 이후 나도 모르게 습관이 생겼다. 1분마다 앱 정리 후 새로고침. 올라올 것 같은 기대, 올라오지 않을 것 같은 증오가 섞여서, 눈꺼풀이 떨린다.
‘지금쯤 그녀도 나를 스크롤하고 있을까.’
욕망의 해부
헤어진 뒤 아무 소식 없는 상대를 향한 집착은, 사실 미제 사건에 대한 탐닉과 비슷하다. 결말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뇌는 끝없이 시나리오를 굴린다.
- 만약 그날 밤 지하철을 탔다면?
- 내가 조금만 먼저 사과했다면?
- 내가 그 한 마디를 하지 않았다면?
모든 가정은 회귀욕망으로 수렴한다. 지난날로 돌아가 한 번 더, 그리고 한 번 더. 끝났다는 사실이 너무 단순해서, 우리는 복잡한 반전을 기다린다.
실제 같은 이야기
사례 1. 혜원과 도현
혜원은 헤어진 지 184일째, 전 남자친구 도현의 운전면허 시험 날짜를 기억하고 있다. 발길이 닿지 않는 구청 홈페이지까지 뒤져 확인했다. 합격 여부는 모르지만, 그날만 되면 카카오T로 검은 캡슐 택시 하나만 바라본다. 도현이 탔을지도 모른다는 서울 3러 7521.
그녀는 면허증 사진이 찍혔을 법한 순간마다 휴대폰을 켠다. 도현의 프로필 사진이 바뀌면 그게 신호일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확신.
‘혹시 다시 운전할 준비가 됐다는 뜻일까?’
사례 2. 유진과 세진
유진은 2년 전 이별한 세진의 번호를 아직도 지운 적이 없다. 단순 번호 차단이 아니라, 휴대폰 자체를 바꿨다. 그런데도 매주 한 번, 통화 기록에 ‘세진’이라는 이름이 1초씩 뜬다. 수신 아님, 발신 아님, 단지 표시만.
통화사면증이라는 병명이 따로 있단다. 바로 그녀가 걸린 병. 실제로는 한 통의 전화도 없었지만, 눈은 번호를 찾아낸다.
왜 우리는 이것에 끌리는가
심리학자들은 이를 불확실성 중독이라 부른다. 확률이 50:50으로 떨어지는 순간, 도박꾼의 뇌가 가장 활발해진다. 헤어진 뒤 침묵은 정확히 그 지점이다. 끝났다는 단정과 다시 돌아올지 모른다는 희망 사이.
그리고 우리는 흔적 수집에 빠진다. 지나간 대화 스크린샷, 사라진 닉네임, 갑자기 비공개된 스토리. 모든 잔해는 복원 가능한 퍼즐 조각처럼 보인다.
뇌는 경계를 지운다. 실제로 다시 만날 확률이 1퍼센트라 해도, 그 1퍼센트에 걸려있는 감정의 무게는 99퍼센트다.
아직도 문을 두드리는 소리
한밤중, 샤워를 마치고 나오면 휴대폰 화면이 켜져 있다. 잠금 해제도 안 한 상태에서 말이다. 그녀의 마지막 메시지가 화면 위에 떠 있던 것처럼 착각한다.
‘진짜로 마지막일까.’
‘아니면 나만 모르는 어떤 다음이 있을까.’
창밖에 가로등이 꺼진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새벽이다. 고개를 돌리면 침대 맡 서랍에, 그녀가 남겼던 립밤이 아직도 있다. 뚜껑을 열자 코 끝이 간질인다. 달디단 체리 향, 입술이 아닌 추억을 물들이는 맛.
문득 드는 생각. 혹시 지금 이 순간, 그녀도 나와 똑같은 향을 맡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