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7 a.m. 다시 그녀의 피드를 들어갔다. 사진은 단순한 커피 한 잔. 검은 머그잔에 하트 라떼아트. 두 시간 전 올라온 게시물. 아래 댓글은 딱 열한 개. 그 중 하나.
예뻐
이름은 김재혁. 프로필 사진은 흐릿한 흑백 사진. 나랑은 한 번도 말을 나눈 적 없는 그가, 단 한 글자로 나를 찌른다.
숨겨진 눈빛
누구나 댓글을 단다. 그녀도 댓글을 받는다. 그런데 왜 '김재혁'의 한마디는 내부를 도르렁 뒤집는가.
나도 '예뻐'라고 쓸 수 있었는데.
아니, 쓰지 못했다. 쓰면 끝장이라는 걸 알았다.
짝사랑의 지옥은 '위치 절벽'에 있다. 나는 팔로워 37번째, 그는 팔로워 2번째. 먼저 찍은 사진, 먼저 발견한 미소, 먼저 눌렀을 좋아요. 아무리 빨라도 두 번째인 이상, '예뻐' 한마디는 남의 영토를 침범하는 처형령.
작은 구멍에 숨겨진 칼
"그 사람은 단어 하나만으로도 내게 말해. 너는 아직 여기 없어, 라고."
정우진, 29세, UX 디자이너. 그는 지난 3개월간 '혜원'의 모든 사진을 저장해왔다. 혜원이 올린 인스타그램 스토리는 24시간 뒤에 사라지지만, 정우진的手機 앨범엔 127개의 혜원이 살아 숨 쉰다.
밤마다 그는 혜원의 반응을 캐낸다. 예뻐(♥) 1 ㅋㅋㅋㅋ(♥) 2 어디야?(♥) 1
하트 개수가 곧 공인 팬클럽 등급인 양 눈에 박힌다. 그러던 어느 날, 김재혁이 등장했다. 처음엔 그저 지인 정도로만 보였다. 두 번째, 세 번째 '예뻐'가 달릴 때마다 정우진은 혜원이 누군가에게 새로이 가닿는 소리를 들었다.
괜찮아, 그냥 친구야.
그런데 다음 날 혜원이 올린 사진. 카페 테라스에서 찍은 얼굴 클로즈업. 댓글 한 개.
오늘 여기서 봬요
김재혁.
그날 이후 정우진의 알림은 밤새 울렸다. 혜원이 올린 스토리마다 반응을 달던 재혁이, 갑자기 사라졌다. 반응은 안 보이지만 혜원의 스토리는 자꾸만 재혁이 찍은 듯한 장소에서 올라왔다. 누가 누군가의 카메라에 들어갔는지, 그건 절대 알 수 없는 일.
아무도 모르게 타는 불
혜원의 집 앞 로스터리 카페. 정우진은 밖에서 서성거린다. 재혁과 혜원이 나올까, 안 나올까. 두 시간째. 창밖에선 햇살이 길다.
카페 안, 혜원이 웃는다. 마주 앉은 재혁이 뭔가를 보여주며 혜원의 손끝을 살짝 만진다. 혜원이 고개를 숙일 때마다 머리카락이 재혁의 손등에 스친다. 정우진은 그 찰나를 자신도 모르게 영상으로 찍는다. 나중에 보면 가슴이 터질 것을 알면서도.
그날 밤, 정우진은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그들은 내가 어디서 보고 있는지 모르지. 그래서 더 깊이 파고들 수 있어."
왜 우리는 숨어서 뜨겁게 되나
타인의 시선이 주는 대리만족
나는 없는 자리, 내가 없는 대화, 나에게 돌아오지 않는 미소를 CCTV처럼 훔쳐본다. 그녀의 반응이 내 반응이 된다.가능성이 죽지 않는 지점
아직 고백하지 않았기에, 아직 차지하지 않았기에, 아직 거절당하지 않았기에. 실패하지 않은 썸은 평생 간다.금기가 주는 쾌감
SNS 감시는 은밀한 포르노다. 누군가의 눈에 안 보이니까, 누구에게도 책임지지 않으니까. 그들이 나를 모를수록, 나는 더 깊이 파고든다.
너를 지우는 법
정우진은 결국 혜원에게 보낼 메시지를 썼다가, 지웠다가, 다시 썼다가, 다시 지웠다. 마지막으로 남은 문장은 이렇다.
"혜원아, 내가 네 사진마다 하트 누르는 거 너무 지겨워서 그래."
전송 버튼 위에 손가락이 떨린다. 그 찰나, 알림 하나. 혜원이 인스타 라이브를 켰다. 화면 속 혜원이 말한다.
여러분, 오늘 재혁이랑 행복한 하루 보냈어요.
정우진은 화면을 끈다. 손가락은 메시지를 지운다. 방 안은 다시 조용해진다. 그리고 그는 모른다.
지금 이 순간, 또 다른 누군가가 내 댓글을 읽고 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