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그녀랑 똑같은 소리를 했을까”
- 그녀가 아래로 내려가는 소리가 들린다, 아주 작은 입맞춤과 질긴 머리카락이 살결을 스치는 촉감까지 생생하다. 나는 18주 짜리 배를 끌어안고 복도 끝에 몸을 숨긴 채, 침실 문이 살짝 열려 있는 틈을 노린다. 아직 몸이 무겁지 않아 빠르게 걸을 수 있지만, 이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 부축이라도 받고 싶어진다.
내가 바란 건 정말 이 광경이었을까.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
배 속에 있는 아이는 아빠와 낯선 여자의 신음섞인 숨소리를 듣고 있을까.
그 생각이 오히려 점점 더 선명해질 때마다 나는 왜 화가 나기보다 가슴이 뜨거워지는 걸까.
남편에게 미안함이나 배신감 대신, 다른 여자와의 오염된 순간을 끌어안고 싶은 충동이 올라온다. 임신으로 변한 내 몸을, 그가 더 이상 원하지 않을 거란 불안을 뒤집어씌우는 방식. 그게 꼭 ‘허락’이 아니라 ‘요구’처럼 느껴진다.
‘당신이 더러워지면, 나도 더러워질 수 있어.’
나도 모르게 속삭이는 말은 어느새 눈물처럼 흘러내린다.
지유와 도현, 그리고 미래의 애인
첫 번째 집
지유는 결혼 5개월 차, 임신 22주. 남편 도현은 어깨 너머로 자초지정을 늘어놓는다.
- “야, 너 옛날에 ‘가끔은 다른 사람이랑 해도 이해해’ 그랬잖아.”
- “그건… 네가 절대 그러지 말라는 뜻이었어.”
그러나 지유는 이미 남편의 연락처를 뒤져 ‘그녀’의 이름을 알아냈다. ‘서윤’— 회사 신입, 26세.
도현이 샤워하는 동안 지유는 카톡을 열어 ‘서윤’에게 간단한 메시지를 보낸다.
안녕, 나 도현이 아내야.
오늘 밤 우리 집으로 와줄래?
아무도 없을 거야.
서윤은 당황했지만, *‘아내가 허락하는 바람’*이라는 희극 같은 설정에 금세 눈을 반짝인다.
그날 밤, 지유는 거실 조명만 껐다. 두 사람이 서로를 찾아 헤매는 발걸음 소리, 문고리를 잡는 손끖 떨림까지 다 들린다. 그리고 지유는 태어날 아기 이름을 중얼거린다.
‘아직 이름도 없는 네가, 아빠를 떠올릴 때마다 이런 밤을 기억하게 될까.’
왜 이토록 타오르는가
침실을 가로막는 문은, 사실 우리 안의 경계를 드러내는 투명한 벽일 뿐이다.
임신 중 늘어난 호르몬이 아니라, *‘이제 내게서 벗어나도 돼’*라는 결핍이 고스란히 타오른다.
자기 최면처럼 반복했던 말:
- ‘난 더 이상 섹시하지 않아.’
- ‘너는 날 만지면 아기를 건드릴까봐 조심해.’
그래서 그 ‘허락’은 정확히는 *‘져라, 그래야 네가 다시 나를 찾아올 테니’*라는 위험한 도박이다.
금기를 깨뜨릴수록, 우리 사이에선 더 뜨거운 무언가가 튀어오를 거라 믿는 착시.
체리와 태호, 다시 돌아온 문 앞에서
두 번째 집
체리는 출산 3주 전, 태호에게 갑작스러운 제안을 한다.
- “살이 찐 내 몸을 보면 네가 질릴까 봐 불안해. 그래서… 다른 사람이 됐으면 해.”
태호는 얼굴이 붉어지지만, 곧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체리는 태호의 손에 모텔 열쇠를 쥐어준다. ‘그녀’는 이번엔 이름도 없는 스트리머다.
태호이 모텔에 들어선 그날 저녁, 체리는 유튜브 라이브를 켠다. 화면 속 태호의 뒷모습이 아주 잠깐 포착된다. 댓글은 들끓고, 체리는 *‘도대체 나는 누굴 구경하는 거지’*라며 아이의 발길질을 느낀다.
다음 날 아침, 태호는 샤워 끝에 머리를 흔든다.
- “미안, 다시는 안 그래.”
- “괜찮아.”
체리는 눈을 깜박이며 대답하지만, 그 말은 ‘괜찮다’기보다는 ‘이제 시작이다’라는 선언처럼 들린다.
문을 닫고 나서
아기는 여전히 배 속에서 발버둥친다.
침대 시트는 새로 장만했지만, 어젯밈의 냄새가 아직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 임신부는 뱃속 아이에게 말한다.
‘자기야, 네가 태어나면 우리는 또 다른 누군가를 끌어들일 거야. 아빠도 엄마도 아닌…’
그 끝에 연결될 장면은 미처 상상하지 못한, 온전히 새로운 금기다.
당신은 정말로 그 사람이 더러워지길 바란 걸까, 아니면 그 더러움 속에서 네가 다시 빛날 거라 믿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