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레스토랑, 날카로운 제안
나 지금 눈을 감을게. 네가 내 시체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가 결정돼.
유리잔에 비친 서린의 눈빛이 너무 선명했다. 그녀는 샐러드 포크를 테이블보 위로 살짝 올려놓고 말했다. 마치 이게 로맨틱한 제안이라도 되는 양. 나는 한참 뒤에야 그게 농담이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욕망이 피어오르는 방식
여기엔 단순한 극적 연출이 없었다. 무언가를 증명하라는 요구는, 사실 욕망의 가장 어두운 형태다.
내가 너를 위해 범죄를 저지른다면, 너는 나를 절대 떠나지 못해.
그녀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재난으로 가늠하고 싶었던 것이다. 평범한 애정 표현으론 부족했다. 더 큰 폭풍, 더 깊은 파국이 있어야만 비로소 믿을 수 있었던 거다.
두 개의 시체, 혹은 사랑 서사
서사 1. 혜지, 29세, 마케팅 전문가
지하 주차장 카메라엔 흑백 영상이 찍혔다. 혜지는 남자친구 민수의 손에 스프레이를 쥐어주며 말했다.
- 내가 거기 누워 있을게. 유리창에다 ‘고마워, 사랑해’라고만 써줘도 돼.
민수는 처음엔 웃었다. 하지만 혜지의 눈빛이 흔들리지 않자 손에 든 스프레이를 떨어뜨렸다. 그날 이후 민수는 혜지를 피했다. 혜지는 사흘 만에 문자를 보냈다.
넌 나를 위해 스프레이 한 번 못 쓰는 사람이야.
서사 2. 세영, 34세, 대학원생
세영은 남자친구 성현에게 ‘장례식 시뮬레이션’을 제안했다.
- 나는 거기 누워 있을게. 네가 빈소를 차리고, 네 어머니에게도 나를 소개해줘. 그러면 난 네가 진심이라고 믿을게.
성현은 눈감고 있던 세영의 손등에 입맞추었다. 장례식장 조화 위로 흘러내리는 허브 향이 머무를 즈음, 세영은 눈을 떴다.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
그리고는 울었다. 울음은 곧 웃음으로, 웃음은 곧 키스로 이어졌다. 그들은 그날 밤 ‘죽은 척’으로 사랑을 확인했다. 그러나 일주일 후 세영은 새벽 전화로 말했다.
- 진짜로 해줘. 그래야 내가 확신할 수 있어.
왜 우리는 파국을 시험장으로 삼나
심리학자 나탈리 시너는 말했다.
극한의 사랑은 극한의 고통을 요구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고통 없이는 ‘진정성’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떤 연인은 상대가 자신을 위해 이직할 수 있기를 바란다. 어떤 연인은 상대가 자신의 가족과 결별하기를 원한다. 그리고 어떤 연인은—아주 드물게—상대가 자신의 죽음을 연기해주기를 바란다.
이것은 단순한 ‘시험’이 아니다. 이건 몰입경이다. 그녀는 사랑이 과연 픽션보다 강렬할 수 있는지를 실험하고 싶었던 거다. 현실은 영화보다 믿기 힘들어야 한다는 강박.
내가 죽은 척만 해도 너는 영원히 나를…
그 말 끝에 숨겨진 문장은 이랬을지도 모른다.
…떠나지 못할 테니까.
아직 차갑게 남아 있는 질문
만약 당신의 연인이 이렇게 말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나 지금 눈 감을게. 네가 내 손목을 잡고 ‘미안하다, 사랑한다’라고 속삭여줘. 그러면 난 평생을 걸고 너만 바라볼게.
그 순간, 당신의 가슴속에선 무슨 소리가 날까.
더 큰 사랑인가. 더 큰 두려움인가. 아니면, 둘 다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