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심리연구소 사랑과 연애의 심리학

창백한 십자가를 품은 15년

결혼 15주년 아침, 남편이 건넨 선물은 작은 흰 막대기였다. 그 창백한 십자가에 새겨진 두 줄은 우리가 서로를 속인 모든 순간을 낱낱이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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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이야.”

아침 7시 23분, 아직 잠이 덜 깬 손에 남편이 쥐어준 건 초콜릿도, 장미도, 반지도 아닌 플라스틱 스틱 하나. 흰 몸통에 투명한 뚜껑이 달린, 임신테스트도 아닌 무언가. 남편이 나지막이 덧붙였다.

“15년이니까… 우리도 한 번 해보자.”

웃으며 말했지만 눈빛은 차갑게 흔들렸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알고 있던 답을 다시 확인하려는 순간이었다.


그날도 이렇게 무거운 아침이었을까.
3년 차 어느 날, 미정은 승민의 속옷에서 맡았다. 달콤하고 끈적한 머스크. 자신이 쓰지 않는 브랜드. 그 향기는 이불 사이, 베개에서도, 문 손잡이에서도 끝내 사라지지 않았다.

아니야, 일은 없을 거야.
그러나 눈을 감으면 낯선 여자의 숨소리가 귀에 남았다. 미정은 그때부터 잠을 쪼개어, 승민의 머리카락 사이를 샅샅이 훑었다. 향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단지 옮겨 다닐 뿐이었다.


“떨어뜨렸다, 미안.”

승민이 고개를 숙였다. 흰 막대기가 욕실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미정이 주워 들었다. 창백한 플라스틱 몸통에, 아주 연한 분홍 두 줄이 서 있었다. 양성이라는 글자는 없었다. 그저 두 줄이었다. 그 두 줄은 15년의 사진첩을 한 장씩 뒤엎었다.

“너, 언제부터였어.”

대답 대신 승민이 물었다.

“너는?”

순간 거실이 고요해졌다. 미정은 처음으로, 15년 만에 남편 눈에서 공포를 봤다. 그 공포는 미정에게서 반사되어 더 커졌다.


“유리창 너머로 봤어.”
미정은 눈을 감으며 말했다. “편의점 불빛 아래, 네 손이 다른 사람 허리를 흔들고 있었지.”

승민은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잠시 뒤, 자신도 눈을 감았다.

“나도 봤어.”
“네가 출장이라 떠난 날, 침대 위에 있던 블라우스... 그건 네가 가장 아끼던 옷이었잖아.”

두 사람은 서로의 눈동자 속에서, 똑같은 장면을 떠올렸다. 하지만 각자의 기억 속 상대는 달랐다. 한쪽은 밤거리 불빛, 다른 한쪽은 침대 위 조명. 둘 다 가슴 한구석에 남은 체취를 떠올리며, 서로를 사과했다. 사과는 서로에게 향했지만, 실은 자기 자신에게 보내는 말이었다.


우리는 왜 이토록 상대의 불륜을 알면서도 참지 못하는가. 왜 복수를 꿈꾸는가.

미정은 15년 만에 처음으로 남편의 가슴에 귀를 대었다. 심장소리는 예전과 같았지만, 그 소리 뒤에 숨은 피맛이 스며들었다. 미정은 그 맛을 알고 있었다. 자신도 몰래 키웠던 욕망의 맛이었다.

나도 몰래 너를 지우려 했어. 네가 남긴 향기를 내 몸에 새기면.


결혼 15년 차 오늘 아침, 미정은 남편에게 물었다.

“우리가 서로를 버린 건 언제부터였을까.”

승민은 대답 대신 테이블 위에 놓인 또다른 검사 키트를 가리켰다. 이번엔 HIV였다.

그래, 우리는 이미 다 알고 있었어.

그대로, 미정은 스스로에게 묻는다.

당신은 언제부터 나를 속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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