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목격한 순간
아직 침대가 차갑게 식어 있었다.
벌거벗은 등 위로 내려앉은 향수 냄새, 지난밤 그녀의 목덜미에 뿌렸던 diptyque 필로이. 내가 아는 냄새였다. 그런데 그 향기가 침대 시트 꼭지점에서 아주 은밀하게, 파르르 떨듯 흩날리고 있었다. 그가 샤워하는 동안, 나는 눈을 감고 그 냄새를 맡으며 문득 생각했다. 아, 이건 나만의 것이 아니었구나.
"그가 원하는 건 단 한 명, 나라고 믿고 싶었는데."
그리고 나는 알았다
사람은 단 한 명만을 원하는 것 같으면서도, 알고 보면 결코 그렇지 못하다. 욕망의 아이러니는 이 단순한 딜레마에 얽혀 있다. 우리는 나만의 것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도, 동시에 아직 내가 모르는 모든 것을 향해 눈동자를 흔든다. 그 흔들림은 결코 예쁘지 않다. 가슴속 어딘가에서 살금살금 불씨가 피어올라 손끝을 뜨겁게 달구는데, 그 열기를 막을 수 없다.
그렇게 우리는 배신을 연습한다. 아니, 배신을 ‘기대’한다. 상대의 눈이 나를 떠나 다른 곳을 향할 때마다 질투가 아니라 음흉한 안도감을 느낀다. 아, 결국엔 그도 나만을 원하지 않는구나. 그럼 나도 마음껏 다른 눈빛을 찾아 떠돌 수 있어.
사연 하나, 유진과 민우
유진은 사내 복도 끝자락에서 민우를 처음 봤을 때, 뭔가 단단히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민우는 남들이 머물지 않는 흡연 구역에서, 매일 다른 향수를 뿌리고 있었다. 월요일엔 머스크, 화요일엔 시더, 수요일엔 먹음직한 바닐라. 유진은 숨죽여 그 향기를 따라가다 문득 깨달았다. 하루하루 민우를 뒤덮는 향기는 이미 그날의 다른 누군가를 맡은 흔적이리라.
그래도 유진은 민우의 눈을 마주치며 웃었다. 되풀이되는 미끼였다. 민우는 그녀의 허리를 안고는 속삭였다.
나한텐 너밖에 없어
거짓말이었다. 유진도 알았다. 하지만 그녀는 그 거짓말을 소중히 간직했다. 왜냐하면, 그 거짓말이 허물어지는 순간이 왔을 때—민우가 또 다른 누군가의 향을 몸에 안고 돌아왔을 때—그녀는 비로소 ‘정당한 슬픔’을 안을 수 있었으니까. 민우를 단 한 명만 원하는 자신의 욕망이 실은 민우의 눈이 흔들릴 때마다 새로 생겨나는 본래 불가능한 꿈이라는 걸 비로소 깨달았다.
사연 둘, 서연이와 제인
서연이는 제인에게 자신의 모든 침실 열쇠를 맡겼다. 제인은 서연이가 다니지 않는 도시에서 왔다가, 일주일에 한 번 서연이의 집에 들렀다. 그날 밤마다 서연이는 제인의 목덜미에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
나는 너만 있으면 돼. 다른 사람은 안 봐.
그러나 제인은 잠든 사이 서연이의 핸드폰을 들여다보았다. 잠금 해제는 안 됐지만, 알림창에 떠 있던 짧은 메시지들이 말해주었다. 새벽 두 시, 밤 열한 시, 아침 일곱 시. 똑같은 말들이 겹쳐 있었다. 나는 너만 있으면 돼.
제인은 미소지었다. 왜냐하면 그녀 역시, 서연이에게 단 한 명만을 원한다고 말하면서도 머릿속으로는 다른 사람들의 손끝을 상상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단 한 명’이라고 위로하면서도, 동시에 ‘다음 한 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결국 둘 다 거짓 위로를 나누며 잠들었다.
욕망의 진짜 이름
"우리가 원하는 건 단 한 명이 아니라, 나만이 알고 있는 한 명이다."
여기서 ‘알고’는 지적 애정이 아니라, 사실은 점유에 가깝다. 타인의 가슴 안쪽, 아직 아무도 밟지 않은 영역을 내 발끝으로 살살 눌러 확인하고 싶은 욕망. 그러한 점유는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불가능할수록 더 타오른다. 알 수 없는 미로를 탐험하는 심장박동이, 자꾸만 새로운 향기를 찾아 떠도는 민우의 눈이, 서연이의 메시지 알림이 뜨는 새벽을 기다리는 제인의 숨소리가 서로 닮아 있었다.
결국 우리는 단 한 사람만 원하는 척하면서도, 그 ‘한 사람’ 안에 수없이 파고드는 다른 얼굴을 상상한다. 그 상상은 죄책감을 넘어선, 어떤 은밀한 쾌감을 낳는다. ‘나는 이미 너를 모두 가졌다’고 말하면서도, 아직 가지지 못한 너의 ‘다음’을 헤아리는 쾌감. 이 윤리적 모순은 사실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본능이다.
네게 남긴 마지막 향기
지금 이 순간, 당신은 누군가를 단 한 명만 원하는가.
그렇다면 왜 당신의 눈은 아직 그 사람의 머리카락 끝에 달린 봄비 냄새를 더듬고 있는가. 왜 아직 그 사람의 목소리 뒤에 숨은 낯선 발음 하나를 찾아 헤매는가.
당신은 단 한 명만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단 한 명에게서 영원히 새로운 것을 원하는 것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