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심리연구소 사랑과 연애의 심리학

그녀는 항상 내가 아닌, 그의 마지막 글자를 읽는다

6개월째 엔엠 관계에 잠긴 너는 알고 있다. 그가 보낸 메시지를 누가 먼저 읽었는지, 그 눈빛이 너의 것이 아니었다는 걸.

엔엠권력관계집착트라이앵글순위

"너 지금 누구 읽고 있어?"

화면 위로 떨어진 알림 한 줄.

[지훈] typing...

채팅방엔 나 혼자가 아니었다. 수진, 유라, 지아까지—네 명의 닉네임이 나열된다. 나는 '나연'이라는 이름으로, 가장 끝에 붙어 있었다. 그가 보내온 문장은 늘 그렇게 생생하게 시작했다. "오늘도 니 냄새가 나". 14자. 그러나 그 14자를 누가 먼저 받아치는지, 누가 가장 뜨겁게 반응하는지, 그 가늠이 늘 그녀의 머릿속에 들어왔다. 나는 그때 알았다. 이건 연애가 아니라 실시간 랭킹이다.


랭킹 0위의 사나이

엔엠 관계의 가장 자극적인 미끼는 단순히 섹스가 아니었다. 누가 더 뜨거운지 드러내는, 차가운 실시간 점수판. 지훈이 보내는 한 줄의 메시지가 떨어지면 네 명의 여자는 동시에 화면을 붉게 달군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항상—

'수진님이 가장 먼저 읽었습니다'

그 문장이 뜨는 순간, 나는 이미 한 발 늦었다. 그녀는 0.3초 만에 스티컈를 밀어 넣고, 0.5초 만에 '사랑해'라고 답했다. 나는 그때 알았다. 나는 1위가 될 수 없다. 0.3초 뒤에, 혹은 1.2초 뒤에. 그 짧은 시간 차가 곧 내가 아닌 ‘그녀’가 된다는 증거.


'나연'의 계산

나연(28·UI 디자이너)은 처음엔 단순했다. ‘번개용 연애’라고 스스로 몇 번이고 다짐했다. 그러나 지훈이 보내는 ‘굿나잇 키스’가 다른 이의 닉네임 옆에 먼저 붙는 순간, 그녀의 머릿속은 눈발처럼 차가워졌다. 한밤중, 그녀는 몰래 다른 계정을 만들었다. 이름은 ‘지아’였다. 새 프로필 사진, 새 말투, 새 시간대. 그리고 다시 초대장을 보냈다. 들어가자마자 보인 건 똑같은 점수판. 단, 이번엔 ‘나연’이 2위로 찍혀 있었다.

내가 만약 2위라면, 1위는 누구지?

그녀는 끝없이 스크롤했다. 그러나 1위는 없었다. 그저 ‘online’ 표시만 깜빡이는 공허함.


'지훈'의 정원

지훈(32·프리랜서 사진작가)은 사실 랭킹을 만들 생각은 없었다. 그저 한 명이 아닌 네 명이 동시에 자신에게 달려드는 광경이 흥미로웠을 뿐. 그러나 그 역시, 어느새 자신이 만들어낸 정원의 꽃잎 숫자를 세고 있었다. 네 명 중 누가 가장 뜨겁게 화답하는지, 누가 가장 오래 기다리는지. 그가 사진 촬영 장비를 들고 떠나는 날엔, 가장 먼저 ‘유라’가 "출장 잘 다녀와"라고 보냈다. 0.7초 만에. 그가 그걸 확인하는 순간, 그녀의 닉네임 옆엔 하트가 한 개 생겼다. 그 하트는 나연에게는 없었다.


결핍의 미끼

우리는 왜 0.3초의 차이에 사로잡히는가.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다중 선택 속 경쟁’은 인간의 가장 오래된 승리 본능을 자극한다고. 그러나 그건 겉모습일 뿐이다. 실제로 우리가 원하는 것은 단순한 1위가 아니다. 남이 가진 0.3초를 빼앗는 순간, 그 사람의 눈빛이 나에게로 쏟아지는 착각. 바로 그 착각에 우린 빠진다.

엔엠 관계는 상대와의 섹스보다, 상대의 눈빛이 '나'에게 머무는 0.1초를 확보하는 게임이다. 그래서 우리는 더 빨리 입력하고, 더 뜨겁게 반응한다. 그러나 그 눈빛은 실은 늘 다음 이의 이름을 기다린다.


너는 아직도 순위를 매기고 있니?

채팅방엔 다섯 명의 닉네임이 떠 있다. 너는 여전히 마지막에 붙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너의 패배는 아니다. 단지 너는 아직도 그 0.3초를 쫓기 때문이다.

그가 보낸 다음 메시지가 뜨면, 너는 어김없이 화면을 두드릴 것이다. 그리고 이번엔 꼭 네 이름이 맨 위에 떠 있기를. 그러나 그건 또 다른 네가 먼저 읽을지도 모르지.

화면 위로 다시 떨어진 알림.

[지훈] 오늘도 니들이 제일 기분 좋게 해줘

그리고 0.2초 만에—

누군가의 닉네임이 가장 먼저 반짝인다. 당신은 아직도 그게 네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손끝을 움직인다.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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