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 위 국물이 식기도 전에 눈빛이 교차했다. 민수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엄마는 머리를 살짝 옆으로 기울였다.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나는 그 사이에 끼여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내가 없는 듯이.’
첫 번째 숨고르기
그 눈빛엔 누가 먼저 웃을까, 누가 먼저 눈을 피할까를 재는 계산이 담겨 있었다. 민수는 나를 보며 말했지만, 말은 엄마에게 던졌다.
맛있게 드세요, 어머님.
엄마는 대답 대신 젓가락으로 김치를 집어 민수의 접시 위에 올렸다. 흔한 배려가 아니었다. ‘네가 먹어야 해.’ 아니, ‘내가 너를 움직일 수 있어.’ 라는 선언이었다.
숨겨진 플레이북
엄마와 민수 사이에선 단어가 아닌 눈과 손끝이 계약서를 대신했다.
- 민수가 차에서 내릴 때 엄마는 현관문을 먼저 열어준다. 환영인 척, 하지만 주인이 손님을 맞이하는 자세다.
- 엄마가 목소리를 낮출 때 민수는 고개를 끄덕인다. 흔들림 없이, 군인의 경례처럼.
- 나는 그 사이에서 ‘딸’ 혹은 ‘여자 친구’라는 이름표만 달고 있었다.
실제 같은 이야기 1. 지은과 재헌, 그리고 미영
지은은 28살, 재헌은 31살. 미영은 지은의 엄마로 52살이다. 둘은 처음 만난 날부터 서로를 ‘쉽지 않은 상대’로 인식했다.
재헌이 지은에게 미안하다며 귀를 만질 때, 미영은 뒤에서 시계를 본다. ‘네가 그 아이를 얼마나 잘 안다고.’ 미영의 시선이 재헌의 허리를 따라 흐른다. 재헌도 느낀다. 그래서 허리를 곧게 펴고, 어깨를 더 넓게 만든다. 미영은 미소 짓는다. ‘좋아, 너도 게임을 알고 있구나.’
밤늦게 지은이 잠든 사이, 재헌은 거실에서 미영과 마주친다. 불이 꺼져 있고, 텔레비전 은은히 켜져 있다.
물 한 잔 마실까요?
재헌이 물었다. 미영은 대답하지 않는다. 대신 냉장고 문을 연다. 유리잔이 부딪히는 소리, 얼음이 튀는 소리. 재헌은 목뒤가 당긴다. 미영은 다가와 유리잔을 건네며 재헌의 손등을 스친다.
이 아이는 잘 모르죠.
누가? 지은을 말하는 건지, 자신을 말하는 건지. 재헌은 잔을 받는다. 미영의 손가락은 이미 떨어져 있다.
실제 같은 이야기 2. 하윤과 서진, 그리고 수진
하윤은 25살, 서진은 30살. 수진은 하윤의 엄마로 49살. 서진은 대기업 상무, 수진은 대학교수다. 지적 자존심의 충돌.
수진은 서진이 가져온 와인을 보며 한숨을 쉰다.
이건 2017년 산 루이 나파지요?
서진이 고개를 끄덕인다. 수진은 ‘알고 있구나’ 하고 중얼거린다. 둘은 와인을 따르지 않고, 와인처럼 서로를 맛본다.
하윤은 화장실에 간 사이, 서진은 수진의 서재를 둘러본다. 심리학 서적, 고대 그리스어 사전. 수진이 서진의 뒤에서 말한다.
하윤이를 좋아하나요?
서진이 돌아본다. 수진의 눈은 눈동자 한복판까지 새까맣다. 서진은 대답 대신 수진의 서재를 가리킨다.
하윤은 여기서 자랐나요?
수진은 웃는다. ‘네가 이 집안에 들어오려면 나를 먼저 넘어야 해.’
왜 우리는 이것에 끌리는가
금기는 강렬한 향기를 낸다. 엄마와 남자, 원천적 금기. 딸의 욕망을 거쳐서만 움직일 수 있는 관계. 엄마는 딸을 대신해 모든 것을 알고, 남자는 엄마를 통해 딸의 전부를 알고 싶어 한다.
이 심리를 두고 ‘에덴 동산의 뱀’이라 부른다. 뱀은 이브를 찾아가 아담을 건드린다. 엄마는 딸의 남자를 찾아가 딸을 건드린다. 딸은 그걸 보면서도 ‘내가 없는 듯이’라는 기묘한 쾌감을 느낀다.
눈을 피하지 마
엄마와 내 남자, 그 눈뜻이 섬뜩한 이유는 단순한 경쟁 때문이 아니었다. 그 눈뜻은 나의 결핍을 알고, 그 결핍을 자극해 나를 다시 둘에게 끌어당기는 장치였다. 나는 눈치 챘다. 내가 그 눈뜻에서 벗어나는 순간, 나는 사라질 테니까.
그래서 당신도 지금 이 순간, 누군가의 눈빛이 겹쳐지고 있지 않은가.
‘내가 없는 듯이’라는 쾌감을 당신도 모르게 따라 하고 있지는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