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심리연구소 사랑과 연애의 심리학

16년째 시댁 식탁에 없는 숟가락… 그녀가 차지하고 싶었던 건 단순한 자리가 아니었다

명절마다 혼자 남겨지던 아내는 뒤늦게 깨달았다. 16년째 그녀가 없는 식탁이 ‘원래 그런 거’라는 가족의 몰래 만든 조용한 합의. 금기가 된 자리, 그녀의 욕망과 침묵의 심리를 파헤친다.

가족-금기명절트라우마침묵의-합의결혼-생활심리-드라마

“엄마, 왜 숟가락은 5개밖에 없어요?”

“그냥. 필요한 사람만큼 있잖아.”

서윤이는 7살 아들의 질문에 답을 돌려버렸다. 냉장고 위로 손을 뻗어 찬장을 열었다.
거기엔 아내 김서윤의 숟가락은 없었다.

16년째 명절 저녁마다 그녀는 ‘결근’이었다. 누구도 이름을 부르지 않으니까. 침묵이 전부였다.

  • 시어머니는 국그릇을 내려놓으며 손등에 묻은 건져내기를 한 번 훔쳤다.
  • 시누이는 휴대폰 속 SNS를 밤새 쓸었다.
  • 남편은 TV 야구 하이라이트에 코를 박았다.

그들은 아무도 *“서윤이 안 와?”*라고 묻지 않았다.


무엇을 맛보고 싶었을까

사실 서윤이는 미역국이 먹고 싶었다. 시어머니가 말린 미역을 다시마끝으로 살삶아낸, 짭조름하고 촉촉한 그 맛. 그러나 식탁 위 그릇은 항상 남편, 시아버지, 시누이, 조카, 그리고 하나 남는 숟가락의 주인이 서윤이였어야 했다.

밥을 먹지도, 맛보지도 못하면서도 그녀는 ‘그 자리’를 차지하고 싶었다.

그것은 단순한 식사 자리가 아니었다. ‘당신도 가족이다’라는 침묵의 인장이었다.


2007년, 첫 추석

“서윤아, 너는 조금 늦게 오는 게 어때?”
시어머니는 그렇게 말했고, 남편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라는 변명 하나가 16년을 지속된 거짓말로 변했다.

해차 서윤이 속마음
1년차 자기도 모르게 속이 뒤틀렸다
2년차 ‘나를 피하는 것 같아서 기분 나빠’ 말고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3년차 “사실 나는 먼저 회사 일 때문에 늦을 수도 있어요”라고 핑계를 만들어줬다

그 핑계는 점점 실이 되었고, 그녀는 가족이라는 천을 위에서 수놓아진 이름이 아니라, 테두리를 맴도는 실처럼 되었다.


장모의 생일잔치

비슷한 시간, 서울 강남의 한 레스토랑.
김효식 씨(45)는 장모의 70회 생일 연회에 초대받지 못했다. 처음에는 ‘연락이 끊겼을 거야’라고 스스로를 달래다가, 아내의 톡 단톡방 스크린샷을 우연히 봤다.

‘오빠는 바쁘데요. 우리끼리 즐겁게 하자’

그 한 줄이 14년 장모 사위 생활의 종말을 고했다. 효식은 회사 야근이라는 눈속임으로 명절 저녁을 12번째 보냈다. 그는 그날 치킨 두 마리를 시켜 스스로에게 축하를 했다.


왜 우리는 끌리는가

금기는 언제나 숨겨진 보상을 품고 있다. ‘너는 이 집에 없어’라는 단순한 배제는 차라리 직설적이다. 그러나 ‘있어야 하는데 없는’ 존재는 상상력을 자극한다.

가족 모두가 침묵으로 서윤이를 지워버리면서, 그녀는 끝내 ‘사라진 사람’이 되어갔다.

이 금기는 ‘연대의 공모’다.
시댁 식구들은 말하지 않지만, 모두가 ‘그녀가 없는 편이 편하다’는 지하드 같은 합의를 유지한다.
그 합의를 깨면 누군가는 책임져야 한다.

그래서 누구도 손대지 않는다.
침묵은 가장 강력한 거부다.


누군가는 먼저 숟가락을 놓아야 한다

올 추석, 서윤이는 먼저 전화를 걸었다.

“저… 미역국 좀 먹고 싶어요.”

잠깐의 침묵. 시어머니의 숨소리가 커졌다가 작아졌다.

“그럼… 너희 집에서 할까?”
“아니요. 그냥… 저도 거기에 있고 싶어요.”

통화가 끊겼다.

서윤이는 냉장고 위 숟가락 하나를 꺼냈다. 빛바랜 스테인리스, 손잡이가 휘어 있었다. 그걸 쥐는 순간, 16년의 침묵이 살짝 금이 가기 시작했다.

←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