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장을 열자마자 느낀 건 피비린내였다
"이게 뭐야."
봉투를 찢자마자 나온 건 침묵이 아니라, 아예 없는 이름. 손에 드는 카드 한 장이, 아니 반쪽이 뱉어낸 건 4년을 씹어 먹은 듯한 텅 빈 공백이었다.
김재현, 하지민, 김준영, 박서준…
거기까지만 있었다. 내 이름, ‘유진’은 단 한 글자도 없었다. 방금 봉투를 뜯은 손가락이 떨렸다. 아니, 떨리기 전에 먼저 달아올랐다. 내가 아는 한, 초대장이 이렇게 정직할 수는 없다.
옆에서 재현이 담배를 꺼내 물었다. 필터를 이가 아닌 혀로 짓누르며 말했다.
"어쩌다 보니…"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이 새끼도 이미 알았다는 걸. 눈을 피하는 0.3초가 아니라, 담배 연기를 세게 내뱉으며 시선을 가리는 동작이 모든 걸 증언했다.
지난 여름, 에어컨이 고장 난 밤
형님—아니 그의 이름은 준혁—은 그날도 집에 들어왔다. 재현이 회식으로 늦을 거라던 날. 나는 그 집 거실에서 반팔 티 하나만 걸친 채 맥주를 홀짝이고 있었다. 에어컨이 나가 있었고, 티셔츠는 땀에 흠뻑 젖어 반쯤 투명해졌다.
준혁은 현관에 서서 한참 나를 바라봤다. 맨발로 걸어오며 말했다.
"재현이는?"
"늦어요."
한마디 주고받은 뒤, 그는 냉장고에서 맥주 한 캔을 꺼냈다. 캔따개가 없었는지 손으로 뽑아버리는 걸 봤다. 그때 튄 액체가 내 가슴 위로 흘렀다. 차갑고 시큼한 거품이 붉은 젖꼭지 위로 흘러내리는 걸, 그는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지켜봤다.
그리고 11분 뒤—시계를 봤으니까 안다—우리는 소파에 누워 있었다. 준혁의 손가락이 내 속옷 안으로 들어왔을 때, 나는 알았다. 이건 절대 안 되는 일이라는 걸. 하지만 그 손끝은 너무 뜨거웠고, 나는 2년 만에 처음으로 타인의 체온이 차가워도 뜨겁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그의 숨결은 내 귓잡을 핥았고, 낮게 떨리는 목소리가 속삭였다.
"재현이는… 모르겠지?"
그 말 한마디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도 우린 서로의 금기를 47분 동안 되풀이했다. 끝나고 나서 그는 말했다.
"이건 없었던 일이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이미 내 목덜미에는 그의 입김이 아직 남아 있었다.
봉투 안에 든 건 침묵뿐이었지만
재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그날 밤 일을 모르는 척했고, 나 역시 그의 척을 받아쳤다. 하지만 초대장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단 한 명의 이름이 빠져 있었으니까.
나는 그날 밤, 그의 가족 단체 카톡방을 떠났다. 그러고 보니, 지금껏 내가 들어와 있던 방은 ‘김가족’이었다. 내 이름은 언제나 ‘재현 와이프♥’로 저장돼 있었다. 그마저 지금은 ‘♥’ 하나만 남아 있었다.
미진의 경우: 그녀는 객관식을 망쳤다
나와 같은 밤을 살아낸 미진은 6년 차 커플이었다. 그녀의 남자친구, 정윤의 형 결혼식 초대장에도 그녀 이름이 없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나도 정윤이 형이랑 한 번 잤거든."
미진은 맥주 캔을 으깨며 말했다. 동네 편의점 테이블 위에 눌러붙은 스티커가 찢어졌다.
"대학원 MT 때. 정윤이랑 사귀기 전이야. 그때 형이 결혼한다고 하니까… 난 그냥 과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사람은 아니었나 봐."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봉투를 꺼내 보여줬다. 미진 이름 대신, **‘정윤+1’**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 ‘+1’은 그녀가 아니라, 아무도 모르는 또 다른 누군가였을지도 모른다.
수현의 경우: 그녀는 주관식을 망쳤다
수현은 7년 차였다. 그녀의 사례는 좀 더 복잡했다. 그녀는 지훈의 형—현우—과 2년 동안 연인이었다. 헤어진 뒤, 동생 지훈을 만났다. 단순한 이직 같은 거였다.
"근데 현우는 날 아직도…"
수현은 목끝을 치켜올렸다. 그녀의 손가락은 아직도 현우가 선물했던 반지 자국이 남아 있었다.
"결혼식 전날, 현우한테서 카톡 왔어. ‘너만 오면 안 된다. 내가 못 참을 거야.’ 그래서 안 갔지."
그녀는 초대장을 내밀었다. 거기에도 수현 이름은 없었다. 대신 **‘지훈 동반 1인’**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 ‘1인’은 아마도 지훈이 새로 만난 24살 직장 동기였을 거다.
금기의 향기는 피 냄새와 닮았다
초대장에 없는 이름은 결국 우리가 숨긴 욕망의 지문이다. 그 욕망은 피처럼 짙고, 뜨겁고, 마를 줄 모른다. 우리는 그걸 숨기려 했지만, 이미 냄새는 온 집안에 배어 있었다.
준혁은 나를 보며 늘 말했다.
"재현이는 못 볼 거야, 너랑 나."
그는 맞았다. 재현은 못 봤지만, 준혁은 봤다. 그리고 그 눈빛이 초대장에 사각거리며 새겨졌다.
결혼식 당일, 나는 TV 리모컨을 쥐고 있었다
준혁의 결혼식 날, 나는 집에 있었다. 재현은 아침 일찍 나갔다. 나는 TV를 켜고 끄기를 반복했다. 채널을 돌리다 보니 다큐멘터리가 나왔다. **‘침팬지의 배제’**라는 제목이었다. 낮은 계급의 암컷은 먹이를 나눠주는 자리에서 늘 끝에 앉았다. 때로는 아예 앉지도 못했다.
나는 리모컨을 내려놓고 울었다. 눈물이 아니라, 뜨거운 분노였다.
그때 문자 하나가 왔다.
[준혁] 미안.
두 글자였다. 나는 답장하지 않았다. 대신, 재현에게 보냈다.
[나] 너도 알고 있었지?
답은 오지 않았다.
누군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초대받지 못하고 있다
결국, 초대받지 못하는 건 우리의 몸이다. 우리가 누구와 잤는지, 누구를 원했는지, 그리고 그걸 들킨 순간 우리는 금기의 향기를 뒤집어쓴다. 그 향기는 피 냄새처럼 지독해서, 다시는 지워지지 않는다.
당신은 아마도 지금도 누군가의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럴 때, 당신의 이름이 없는 그 카드를 다시 봐라. 그리고 왜 없는지를 생각해봐라.
아마도 당신은 이미 알고 있을 거다. 그리고 그걸 아는 누군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