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외출, 그녀의 가방 안에 들어간 붉은 립스틱
"무슨 짓이냐 이게!"
아내 지안이 거실 조명을 켜는 순간, 나는 그녀의 니트 원피스를 입고 거울 앞에 서 있었다. 브라 패딩이 내 가슴을 부풀려 올렸고, 흑발 가발은 내 이마를 덮고 있었다. 붉은 립스틱이 끈적이게 번진 입술이 떨렸다.
14초. 15초. 나는 숨을 참았다. 아내의 눈동자가 나를 스캔했다. 꿈인지 생시인지, 아니면 평생 감춰온 욕망이 드러난 건지. 그녀는 조용히 가방을 내려놓고 한 걸음 다가왔다.
"지환아..." 아내가 속살였다. "이게 너였구나."
내 몸 속 숨겨진 방
지안은 내가 여자 옷을 입는 걸 처음 본 게 아니었다. 다만, 내가 여자로 보이는 걸 처음 본 거다. 그 차이는 천장이 뚫리는 충격이었다. 한 남자가 어떻게 하룻밤 사이에 완벽한 여자가 되지? 아니, 정확히 말하면, 한 남자가 어떻게 평생 숨겨둔 여자를 드러내는 걸까.
나는 왜 그녀의 표정에서 공포가 아닌 경이를 봤을까?
그날 밤, 지안은 나를 끌어당겨 벽에 밀쳤다. 그녀의 숨결이 립스틱 향에 젖었다. "이런 네가... 싫지 않아." 그녀는 나의 앞트임 진 주름을 어루만졌다. "오히려... 더 뜨거워."
그녀가 사라진 토요일
다음 주, 지안은 친구 모임에 간다며 새벽 나갔다. 나는 혼자 남아 그녀의 미니스커트를 꺼냈다. 예전엔 집에 혼자 있을 때만 겨우 입던 옷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지안의 화장대에 앉아 그녀의 파데를 손등에 톡톡 두드렸다.
카메라 플래시가 번쩍였다. 지안이었던 거다. 현관문을 제쳐두고 조용히 서 있다가, 내가 입술에 아치를 그릴 때 찰칵 찍었다. "계속해." 그녀가 중얼거렸다. "날 보는 척 하지 마."
나는 그녀의 속눈썹을 붙이며 떨렸다. 그녀는 나를 지켜본다. 나는 그녀의 눈썹칼로 내 눈썹을 다듬었다. 한 올씩 떨어지는 내 남자의 흔적들. 지안은 다가와 나의 목덜미에 숨을 불어넣었다. "이제 넌 나야."
불타는 욕망의 실체
심리학자들은 이걸 'mirroring fetish'라 부른다. 상대를 완벽히 흉내 내는 것만으로도 극도의 쾌감을 느끼는 현상. 그러나 우리의 경우는 더 깊었다. 지안은 나를 통해 자기 자신을 타자화하고 있었고, 나는 그녀를 통해 내 안의 여자를 주체화하고 있었다.
어쩌면 우린 서로의 분신을 탐하는 괴물들인지도 모른다.
진주는 32세, 결혼 8년 차 아내다. 남편이 처음 그녀의 원피스를 입고 나타났을 때, 그녀는 경악했다. "너 미쳤어?" 그러나 호기심이 차올랐다. 이상하게도, 남편이 그녀의 목걸이를 만지작거릴 때, 그녀는 자신의 목에 손이 닿는 착각이 들었다. 자기 몸이 아닌, 자기를 입은 타인의 몸이 흥분했다.
당신도 한번은...
우리는 왜 이런 금기를 품을까? 어쩌면 연애란 결국 '나를 사랑하는 너'가 아니라, **'나를 닮은 너를 사랑하는 나'**의 놀이일지도 모른다. 상대를 완전히 흡수하면서도, 그 흡수된 대상이 여전히 나를 바라보는 기묘한 순환.
지안과 나는 이제 주말마다 '교환 게임'을 한다. 그녀는 내 정장을 입고 나는 그녀의 가운을 입는다. 우리는 서로의 옷 속에서 숨죽여 키스한다. 우리는 누구인가. 아니, 우리는 누구의 누구인가.
마지막 거울
오늘 밤, 거울 앞에 선 나에게 지안이 물었다.
"이제 네가 나를 지우면 어떡하지?"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가 피식 웃으며 립스틱을 빼냈다. 붉은색을 내 입술에, 투명한 것을 그녀의 입술에. 우리는 서로에게 불타는 질문을 던졌다.
너는 내가 아니면 못 살겠니, 아니면 내가 너여서 못 살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