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심리연구소 사랑과 연애의 심리학

결혼 아니면 헤어짐, 모노그래미 못하는 내가 왜 더러운가

침대 옆 서랍에서 발견한 반지 상자. 결혼을 약속할 수 없는 나는 왜 더러운 취급받는가. 두려움과 욕망 사이, 끝내지 못한 어른아이들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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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화장대 서랍을 살짝 열어놓고 간 날, 나는 반짝이는 작은 상자를 봤다. 다이아몬드. 얼마나 오래 준비했을까. 머릿속이 띵했다. 나는 그대로 도망쳤다. 결국, 같은 밤 그녀는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너랑 나랑, 둘 중 하나만 바보였으면 좋겠어.

그녀의 침대는 이미 장래일기

우리는 석 달째 똑같은 말을 되풀이한다. 결혼. 그녀는 그 단어를 입에 달고 산다. 나는 그 단어를 입에 달고 죽는다. 아침마다 그녀가 떠올리는 예식장 사진, 웨딩드레스 핀터레스트, 애기 손 잡고 서 있는 필터링 셀카. 나는 그 모든 미래의 한복판에서 사라진다.

내가 두려워하는 건 평생이 아니라, 평생을 한 사람 앞에서만 설 수 있다는 확신이 없어서야.


실제 같은 이야기 두 편

미나와 준호, 5년 차

미나는 서른다섯, 준호는 서른일곱. 동갑내기들 결혼 소식이 쏟아지는 사이, 미나는 준호에게 마지막 통보를 했다.

나는 내년엔 아기를 젖병에 물리고 싶어.

준호는 TV를 보는 척했다. 화면엔 아무것도 안 나온다. 시청률 0%의 하트가 뛴다. 미나는 이미 혼인신고서를 다운로드받아 두었다. 준호는 쿠키 한 입 뜯으며 생각했다. 한 입 먹는 순간, 사랑이 끝나는구나.


유진과 세린, 8년 차

유진은 뮤지컬 배우, 세린은 연출가. 화려한 무대 뒤편, 두 사람은 빈 객석에서 섰다. 유진이 물었다.

우리, 아직 이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세린은 대답 대신 무대 조명 스위치를 내렸다. 어둠 속에서 유진의 숨결이 닿았다. 세린은 속으로 말했다. 네가 나를 버리면, 나는 네가 영원히 나를 기억하게 만들 거야. 스위치를 올리자, 유진의 눈가가 붉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부수고 싶어 안달이 났다. 부수면 끝이니까.


왜 우리는 이 지옥에 끌리는가

모노그래미는 성역일까, 권력의 옥좌일까. 사회는 연애를 수학 문제로 바꿔버렸다. 만남 → 데이트 → 동거 → 결혼 → 출산. 경로를 벗어나면 낙오자. 낙오자는 더러운 취급이다.

나는 왜 더러운가. 아니, 나는 왜 더러워지고 싶은가. 금기의 맛이 달다. 평생 한 사람만 봐야 한다는 계약서에 서명하지 않는 순간, 나는 엄청난 자유를 얻는다. 동시에 엄청난 죄책감도.

누군가는 결혼이 사랑의 보호막이라 말한다. 하지만 그건 또 다른 이름의 감옥이다. 우리는 끝을 모르는 사랑을 원하면서도, 끝이 없는 사랑을 견딜 수 없다는 걸 안다. 그래서 결혼이 아니면 헤어짐이라는 갈림길에 선다. 이별. 그 단어는 이미 우리 안에 묻혀 있다. 단지 누가 먼저 꺼내냐의 차이일 뿐.


마지막 질문

지금 이 순간, 네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결혼을 약속할 수 없다면, 넌 정말로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는 게 맞을까. 아니면 단지 사랑이 식는 걸 두려워해서, 영원히 굳어지는 걸 두려워해서, 한 번도 끝내지 못한 어린아이처럼 끝을 피하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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