훅
"또 그 여자야."
밤 11시 46분. 서린은 화면을 확대해 두 손으로 가린 눈 사이로 흘끗 훔쳐본다. 아무것도 아닌 듯 올라온 사진 속, 그의 손등이 여자의 어깨 위에 살짝 올려져 있다. 맞은편에서 찍은 ‘우연한’ 단체 사진. 그러나 착각이라 해도 너무 노골적이다. 여자는 시선을 아래로 떨구고, 그는 그 눈길을 받으며 웃는다. 순간 서린은 대기실 거울 앞처럼 차가운 화면에 자신의 얼굴이 비친 걸 느낀다. 이건 왜 이렇게 아프지?
숨겨진 각도
우리는 남자들이 단순히 ‘사진을 올릴 줄 몰라서’라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사진 한 장은 언제나 의도를 숨기지 않는다. 각도, 빛, 여자의 위치, 그리고 그를 감싸는 테두리까지.
있는 그대로 찍은 거라면서, 왜 이토록 연출이 느껴지지?
그들은 스스로도 인정하지 못하는 욕망을 조심스레 드러낸다. ‘나는 인기 많아’를, ‘나는 아직 네 것이 아니야’를. 다른 여자의 얼굴은 본의 아니게 미러볼이 된다. 별일 아닌 듯 돌리지만, 결국 빛은 자신을 향한다.
그녀들의 이름
1. 유미, 28세, UX 디자이너
유미는 한창 대기업 사수의 눈 흘끔거림을 받던 시기였다. 금요일 밤, 그와 술 한 잔 하며 막걸릴 사이. 그때 휴대폰이 울린다. 사수는 화면을 비스듬히 살짝 기울여 보여준다.
여자 1: 어깨동무
여자 2: 얼굴이 맞닿은 채로 장난치는 중
여자 3: 테이블 아래 손가락이 연결된 듯 착시
"그냥 동호회 사람들이야." 사수는 말한다. 그러나 유미는 똑똑히 본다. 사진 속 여자들은 모두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라는 인증샷 역할을 한다. 그녀는 뒤늦게 깨달았다. 그가 보여준 건 결국 ‘선택지가 많은 나’를 드러내는 거울이었다. 사수와의 썸은 그날로 사그라들었다.
2. 지아, 31세, 바리스타
지아는 3개월째 만나던 남자와 SNS를 맞팔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계정은 마치 남의 집 현관처럼 엿보이는 동시에 늘 닫혀 있었다. 어느 날 오후, 그가 올린 스토리 하나. 클럽에서 춤추는 여자들과 그의 어깨. 여자들은 전부 누군가의 여자친구가 아니라는 듯 자유롭다.
지아는 그날 밤 혼자 카페를 열어 모카포트를 올려댔다. 뜨거운 물이 올라오는 사이, 그녀는 깨달았다. 자신이 분노하는 건 단순히 사진 때문이 아니라 ‘내가 없는 세계’ 때문이었다. 그가 만든 작은 우주, 그리고 그 우주에서 자신은 초대받지 못한 외계인.
금기의 달콤함
우리는 왜 이토록 끌릴까. 왜 ‘나’와 ‘그’ 사이에 세 번째 여자가 있을 때 더욱 눈이 떠지는 걸까.
그건 아마도 ‘선택받지 못한’ 자의 시선 때문일 것이다. 짐승처럼 남루한 질투는 동시에 가장 인간적인 감정. 애초에 우리는 ‘영원히 나만 바라보길’을 바라면서도, ‘그가 누군가의 시선에 아름답게 비춰지길’을 원한다. 믿기 힘들겠지만, 그건 사랑의 알맹이와도 같다.
남들도 나와 같은 감정을 느끼길 바라는 동시에, 남들과는 절대 달라야 한다고 믿는 아이. 그게 우리다.
마지막 질문
그가 올린 다른 여자 사진을 보며 당신은 분노한다. 그래도 아직 너는 그의 계정을 차단하지 않았다. 차라리 네가 사진 속 여자였다면, 혹은 차라리 네가 찍어준 사진이었다면. 이 두 가지 상상 중, 어느 쪽이 더 아프게 만드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