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심리연구소 사랑과 연애의 심리학

그녀는 약 먹는 순간만 사랑스러웠다, 왜 떠나지 못했을까

정신병동에서 돌아온 연인의 유리 같은 순간들이 남긴 환각 같은 사랑. 우리는 왜 미친 사랑에 남아 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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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약 먹는 순간만 사랑스러웠다, 왜 떠나지 못했을까

(책상 위 알람이 울린다, 오후 7시 반. 지하철에서 내린 그는 아직도 숨을 죽인다)

이게 너무 늦었어? 문자 한 줄이 날카롭게 울린다. 늦었다면 어떡할래, 난 네가 무서워. 거의 동시에 이모티콘 하나, 빨간 하트가 찢어질 듯 커다랗게. 하트가 피처럼 보인다.

그는 편의점에서 소주 두 병을 사고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은다. 14층. 문이 열리자 향긋한 병약 냄새가 코를 찌른다. 거실엔 유리 조각들이 반짝인다, 유리잔 하나가 깨져 있었다.

  • 미안, 손이 미끄러졌어.

흰 피부에 새하얀 잠옷을 입은 여자가 말 없이 웃는다. 눈이 너무 까맣다, 마치 구멍처럼.


유리 같은 기억의 조각

그녀는 제때 약을 먹으면 온전한 사람이었다. TV 리모컨을 두고 다투고, 키스를 청하고, 반찬 냄새를 맡으며 살갑게 웃었다. 그러나 해가 지면 어딘가 금이 갔다. 그녀는 칼을 들고 다시 태어난다, 말하기를.

너는 내가 죽으면 누구랑 사랑하려고 해?

문득 던지는 질문 하나에 숨이 막힌다. 그는 이불 속으로 손을 넣어 그녀의 손목을 잡는다. 흉터가 있다, 날카로운 것으로 그은 듯한. 그 흉터가 아름답다. 그는 스스로에게 놀란다.


욕망의 해부

정신병동에서 퇴원한 연인을 돌보는 건 거대한 두려움이다, 동시에 거대한 권력이다. 약 먹였는지 확인하고, 세 살 아이처럼 울며 달라붙는 그녀를 달래주는 감정. 나는 그녀를 조종할 수 있어. 그리고 조종당할 수도. 어두운 균형이다.

그는 병원에서 배운 말을 떠올린다. 조현병 환자는 사랑한다 해도 현실 검증이 어렵다. 즉, 사랑 자체를 믿을 수 없다는 뜻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붙잡는다. 왜냐하면 그 무증거한 사랑이 너무 뜨겁기 때문이다.


유미와 재현, 그리고 나

유미는 한때 광고 회사 크리에이티브였다. 26살에 첫 정신증, 28살에 두 번째 입원. 남자 이름은 재현. 그들은 병원 복도에서 만났다, 재현이 우울증으로 입원했을 때. 유미는 흰 가운을 입은 복도의 요정처럼 보였다. 눈이 너무 컸다, 말이 없었다.

재현은 퇴원 후에도 계속 왔다. 유미의 어머니는 딸이 왜 이 남자를 끌어들이는지 몰랐다. 유미는 말했다.

  • 엄마, 나는 약 먹으면 누가 누군지 몰라요. 그 사람만 나를 기억해줘요.

재현은 이 말을 들었다. 그날 이후 그는 자신이 유미의 유일한 닻이라는 착각에 빠졌다. 유미는 퇴원 후 하루에도 수십 번 재현에게 연락했다. 잠을 못 잔 날엔 아침 5시 전화, 재현이 받지 않으면 119에 가족 자살 신고를 했다. 경찰이 출동할 때쯤 재현은 숨을 헐떡이며 그녀 집 앞에 도착했다. 유미는 문 앞에 앉아 머리를 긁적였다.

  • 미안, 혼났지?

금기를 밟는 쾌감

이 이야기는 단순한 연민이 아니다. 정상과 비정상 사이 선을 넘나드는 쾌감이 있다.그녀가 미칠수록 내가 더 이성적이고, 내가 더 이성적일수록 그녀가 더 미쳐버린다는 뒤틀린 우월감.

재현은 유미가 약을 먹지 않은 날을 기억했다. 유미는 발가벗고 거울 앞에서 서서 자기 목을 어루만졌다. 그녀는 말했다.

  • 나는 여기서 빠져나가고 싶어, 나는 사기꾼이야.

그녀는 자기를 속였다는 말을 했다. 사실 모든 사랑이 그렇다, 자기를 속이는 것. 유미는 재현에게 물었다.

  • 너도 나를 속였지?

심리가 궁금한 순간

정신의학 교과서는 말한다, 일부 건강한 사람은 미친 이의 광기 속에서 상처받은 아기를 본다고. 아기는 보호받아야 한다, 양육자의 욕망을 자극한다. 그러나 이건 반만 맞는다. 우리는 상처받은 아기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상처받은 아기를 통해 내 안의 무언가를 확인하기 때문이다.

재현은 유미의 부모님에게서 이상한 말을 들었다. 유미는 어릴 때 화장실에 갇혀서 하루 종일 울었다는군. 그날 이후 유미는 누군가가 문을 닫으면 소리를 질렀다. 그래서 재현은 화장실 문을 항상 열어두었다. 그 순간 재현은 깨달았다. 나는 그녀의 과거를 고치려는 게 아니라, 내 과거를 고치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문이 닫히는 소리

어느 날 밤, 유미는 재현의 휴대폰을 보고 미쳐버렸다. 잠든 사이 누군가와 문자를 주고받았다고, 실은 광고 문자였지만. 유미는 날카로운 칼을 들고 재현의 뺨을 어루만졌다.

  • 너도 나를 버릴 거야, 다들 그래.

재현은 가만히 있었다. 칼 끝이 차가웠다. 눈앞이 아찔했다.

그때 유미가 말했다, 한 마디.

  • 아무도 안 버리면 어떡하지?

칼이 떨어졌다. 유미는 재현의 품에 안겨 울었다. 그녀는 말했다, 처음으로.

  • 미안, 나도 떠나고 싶어.

마지막 문장

그날 밤 재현은 유미의 손목에서 시계를 끊었다. 시계는 멈췄다, 시간이 멈췄다. 그러나 재현은 아직도 문을 열어두고 있다. 왜냐하면, 닫힌 문 앞에 서 있는 건 유미가 아니라 나일지도 모르니까.

당신은 정신을 잃은 사람을 사랑한 적 있는가, 아니면 정신을 잃은 사랑에 남아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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