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개 밑에 녹음기를 두고 나왔어"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307호, 김유진이 아내의 손을 잡고 들어가는 순간 나는 계단 뒤편에 몸을 숨겼다. 스마트폰 화면이 켜졌다. 앱 하나를 실행하자 녹음 아이콘이 빨간 맥박을 뛴다.
내가 몰래 설치한 기기가 우리 침실 구석, 모서리 끝에 자리 잡았다. 복도는 잠잠했다. 발걸음이 사라지자 나는 아파트 뒷길로 나와 담배를 입에 물었다. 불이 붙는 순간, 귀에 거는 무선 이어폰에서 신호가 잡혔다.
욕망이 꿰뚫는 순간
‘이건 복수가 아니야. 그냥… 나도 모르게 관찰하고 싶었을 뿐이지.’
그날 이후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녹음을 들었다. 오후 3시께 유진이 집으로 오는 시간, 문 열림 소리, 그리고 너무나도 생생한 숨소리. 아내 은영이 애교 섞인 목소리로 웃었다. 한참 후엔 침대 스프링이 울렸다. 그때마다 나는 차 안에서 천천히 시동을 걸었다. 바퀴가 굴러갈수록 내 몸은 달아올랐다.
비밀의 룸 307
“도대체 왜?”
회사 동료 형준에게 술을 한 잔 걸쳤을 때 그가 물었다. 나는 답했다.
형준, 지난주에 은영이랑 유진이 둘이 600포텔로 갔다더라. 나는 안다. 그래서 퇴근 후 그 호텔 주차장에 몰래 들어가 차 안에서 새벽 두 시까지 기다렸다. 아침 7시, 은영이 화장 좀 고치고 나오는 걸 봤지.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순간, 가슴이 미친 듯이 뛰었다. 아니, 화가 나서가 아니라. 놀랍도록 선명한 살아 있음의 느낌 때문이었다.
이웃집 창문 너머로
‘자기, 나도 우리 침대에서… 누군랑 했어요.’
라이벌이자 절친이던 민석이 말했다. 우린 고등학교 동창이고,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산다. 그는 내게 화면 하나를 내밀었다. CCTV 캡처 영상이었다. 그 영상에는 민석의 아내 수진과 그녀의 PT 트레이너가 민석의 집 거실 소파에 누워 있었다. 민석은 웃었다.
“처음엔 눈 감고 지우려 했는데, 이상하게도 계속 보게 되더라고. 자꾸만 눈이 갔어.”
그는 수진이 트레이너와 키스하는 장면을 3분간 반복 재생했다. 그리곤 말했다. “이게 내가 아내를 사랑하는 건지 일깨워준 거 같아. 내가 갖지 못한… 뭔가를 딴 놈이 가져가는 광경, 그게 너무 인간적으로 화끈하더라.”
금기를 썰어 먹는 법
왜 우리는 배신의 광경에서 두려움 대신 흥분을 느낄까?
심리학자 브라운의 ‘카니발리즘 욕망’ 이론은 이렇게 말한다. 일단 누군가 ‘내 영역’에 속해 있다고 믿어지면, 그 사람의 욕망이 나에게서 벗어날 때 오히려 더 선명하게 느껴진다. 그것은 마치 *“내가 먹고 있는 음식을 다른 이가 훔쳐 먹는 광경”*처럼 자극적이다. 어찌 보면 나는 아내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아내를 관음하는 데 중독된 것이다.
민석도 마찬가지였다. 수진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수진의 욕망이 자신 밖으로 누출되는 순간을 마치 슬로 모션으로 감상했다. 그것은 오래된 결혼에서 찾아온 유일한 자극이었다.
문을 두드리는 외침
오늘도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유진의 신음소리가 더 짙어졌다. 아내는 사랑스럽게 속삭였다. “조심해, 우리 집이야.” 한참 뒤, 스프링이 멈췄다. 문이 닫히는 소리. 그리고 정적. 나는 차에서 내려 현관으로 들어갔다. 거실 불이 켜져 있었다. 아내가 반바지 차림으로 서 있었다.
“오늘도 늦었네.”
“회의가 길었어.”
나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눈을 바라봤다. 그는 아직도 그 안에 있다. 나는 아내를 끌어안았다. 그녀의 머리카락에서 아직 남자 향기가 남아 있었다. 내 심장은 폭발하려 했다. 왜냐하면, 나는 지금도 그 향기를 깊게 들이마시고 있으니까.
질문 하나 남겨둔다. 당신은 당신의 연인이 다른 이의 품에 있을 때, 눈을 감을 것인가, 아니면 눈을 크게 뜨고 그 순간의 모든 열기를 마셔버릴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