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아직도 이거 가지고 있었어?”
지훈이가 웃으며 침대 밑에서 질그릇처럼 굴러 나온 붉은 립스틱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차은채라는 이름이 새겨진 금장 케이스. 여섯 해 전, 그녀가 떠나며 화장대 위에 던져둔 그대로였다. 당시엔 쓰레기통으로 던져버릴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나는 그걸 당장 치우려다 손이 떨려 내려놓았다. 붉은색의 미세한 긁힌 자국이 도드라진다. 마치 그날, 그녀가 내게 남긴 상흔처럼.
문지방 너머에서 숨 쉬는 목소리
사실 립스틱은 시작일 뿐이었다. 지난밤, 현관문 옆 문지방에 긴 머리카락이 둥실 떠 있었다. 애써 눈길을 돌렸지만 이미 뇌리에 찍혔다. 은채는 긴 생머리였다. 나는 단발을 유지한다. 이틀 전 쓰레기봉투에서도 같은 머리카락이 나왔다.
‘아니야, 6년이 지났는데…’
‘그럼 왜 눈이 먼저 알아챘지?’
눈은 기억을 부정하지 않는다. 몸도 마찬가지였다. 욕실 거울에 서면 아직도 그날의 화장품 냄새가 코끝을 간질인다. 사향과 장미, 끓는 젖. 그녀가 한번 키스하면 술렁이던 내 가슴의 온도를 가끔 홀로 꺼내본다. 아무도 모르게.
당신의 욕망은 범죄현장
6년. 달력만 봐도 시간이 흘렀다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관계는 종이 한 장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별’은 서류상 절차일 뿐, 잔해는 온몸에 박혀 계속 자라난다. 특히, 누가 먼저 떠났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떠난 자는 흔적만 남기고, 남은 자는 그 흔적을 관음한다.
나는 매일 새벽 2시 17분에 잠에서 깬다. 6년 전 은채가 마지막 문자를 보낸 시각이다. ‘그래도 나는 네가 제일 좋았어’라는 말 한 줄. 그 문장이 가진 코카인 같은 힘은 지금껏 내 핏줄을 타고 흐른다. 알면서도 해롭다는 걸 아는데, 끊을 수 없는 중독.
‘사실 나는 그때 죽고 싶었다’라는 말보다 더 무서운 건 ‘사실 나는 그때 더 살고 싶었다’는 고백이다.
아직도 그녀의 이름표가 붙은 우리
실화처럼 들려줄 이야기 두 편.
사례 1. 민재, 34세, 기획사 AE
민재는 유리창 너머로 '그녀'를 본 날이 지난달 12일이었다. 인도네시아 출장길. 공항 라운지에 앉아있던 여자, 스칼렛 레드 립스틱, 은채가 늘 바르던 색깔. 그는 복도 끝까지 쫓아가 확인했다. 이름은 달랐다. "아, 미안해요. 실수였어요." 여자는 서둘러 자리를 떴지만 민재는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날 밤 호텔 침대에 누워 그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아직도 그녀를 쫓고 있어. 그녀는 떠났지만, 나는 아직 출발도 안 했지.’
다음날 그는 전 여자친구 SNS를 47번 뒤졌다. 사진은 없었다. 단지 흔적만. 여자를 태그한 친구의 생일 파티 사진. 가장자리에 반만 잡힌 스칼렛 주황색 컵. 그걸 보고 민재는 비로소 잠이 들었다.
사례 2. 수진, 29세, 약사
수진은 남편 휴대폰에 저장된 ‘약국 직원’ 연락처를 매일 확인한다. 이름은 *‘국제약국 A매장’*이지만 실은 전 남자친구가 바뀐 것이다. 5년 전 헤어진 뒤로 그는 계속 살아 있다. 수진은 그가 보낸 마지막 음성메시지를 매일밤 소리 없이 재생한다.
‘배고프면 연락해. 혼자 먹기 싫어.’
단 5초 짜리. 그러나 그 5초가 수진의 일상에 깊숙이 스며들었다. 남편이 잠든 새벽, 그녀는 이어폰을 꼽고 그 메시지를 0.5배속으로 들었다. “배-고-프-면-” 늘어진 목소리가 어린 시절 수진이 듣던 자장가처럼 느껴졌다. 기억이 변질되며 더 자극적이 되는 법. 남편은 모른다. 잠든 아내가 매일 새벽 다른 남자의 목소리에 젖어든다는 걸.
끝나지 않은 관계는 누구의 권력인가
이별 후에도 우리가 끊임없이 전전긍긍하는 건 결국 권력 문제다. 누가 먼저 잊느냐가 아니라, 누가 아직도 머릿속에 지배하고 있느냐.
심리학자들은 이걸 ‘사이코적 분리(pychic separation) 실패’ 라 부른다. 하지만 나는 더 직설적으로 말하겠다. 우리는 상대에게서 떠난 뒤에도, 뇌 안의 작은 방에 그를 영원한 정치범으로 가두는 것이다.
‘그를 기억한다는 건, 내가 그를 아직도 살아 있게 한다는 뜻이야.’
그런데 이게 단순한 미련이 아니다. 일종의 불멸의 성찬. 우리가 매일 섭취하는 추억은, 실은 우리를 그 관계의 노예로 만든다. 그리고 노예는 자유를 갈망하면서도, 동시에 노예로 남고 싶어 한다. 왜냐하면 자유는 책임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너는 아직도 그녀의 립스틱을 치울 수 없는 이유
나는 종종 생각한다. 만약 그날 휴지통에 그 립스틱을 던졌더라면 지금쯤 뭐하고 있을까. 설령 던졌다 해도, 버려진 물건의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뭘까.
“너는 그 잔해를 치우는 게 아니야. 그 잔해와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야 해.”
그런데 이건 너무 성의 없는 대답일지도 모른다. 결국 우리가 원하는 건 끝내는 방법이 아니라, 끝내고 싶지 않은 마음을 어루만지는 거짓 위로다. 왜냐하면 끝나지 않은 관계는 이미 우리의 피부가 되어버렸으니.
어느 날, 나는 침대 밑에서 또 다른 물건을 찾았다. 이번엔 양말 한 켤레. 검은색. 은채의 사이즈였다. 나는 양말을 들고 욕실로 갔. 뜨거운 물에 넣고 주물렀다. 빨갛게 물든 물이 배수구로 스며들었다.
그때 깨달았다. 우리는 이별의 죄를 빨래하는 방식으로 용서받으려 한다. 하지만 용서는 오지 않는다. 대신 욕망만이 남는다. 그리고 그 욕망은, 아직도 우리를 살아 있게 한다.
그래서 너는 언제쯤, 그 립스틱을 침대 밑에 다시 숨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