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심리연구소 사랑과 연애의 심리학

그녀의 침대 위, 내가 빌려준 돈으로 산 레이스 브라

30년 절친이 떠난 날, 문 앞에 놓인 건 유리구두 열쇠고리가 아니었다. 반쯤 찢긴 레이스 브라와, 그 속에 남아 있던 남편의 손끝이었다.

절친질투금기침묵결별
그녀의 침대 위, 내가 빌려준 돈으로 산 레이스 브라

문 앞에 놓인 건 유리구두 열쇠고리 한 개와, 검은 비닐봉지 안에서 반쯤 찢긴 레이스 브라였다. 75B. 지현의 사이즈. 그리고 내가 빌려준 돈으로 산 것이다.


나는 오후 두 시, 아니 세 시까지 그곳에 서 있었다. 음산한 12월 바람이 치마 속으로 파고들었다. 손에는 지현이 마지막으로 보낸 카톡 한 줄만 남았다.

"네가 떠날 때까지는 몰랐어. 네가 얼마나 시커먼 욕망을 품고 있었는지."


첫 키스처럼 달콤했던 30년

고등학교 2학년 어느 늦은 밤, 우리는 처음으로 서로의 입술을 맞댄 적이 있다. "이건 비밀이야" 라고 속삭이던 지현의 숨결이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그날 이후 우리는 서로의 첫사랑, 첫 실연, 첫 금기마저 나눠 먹었다.

대학 졸업 후 지현이 결혼했다. 신랑은 대기업 이사, 집안은 부자였다. 나는 그녀보다 먼저 축의금 50만 원을 송금하며 "대신 행복해줘" 라고 문자를 보냈다. 그녀는 바로 전화를 걸어왔다.

"오늘 밤, 너만은 꼭 와줘. 네가 없으면 나 진짜 못해."

나는 갔다. 지현의 신혼집 침대 위에 놓인 건, 그녀 시어머니가 딴지 걸었던 레이스 브라였다. "이건 진짜 너무 야해서..." 라는 시어머니의 말에 지현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엄마, 이건 제일 친한 친구가 선물이에요. 제가 정사할 때만 입는 거예요."

그 말이 어떤 예언이 되었을 줄은.


그녀의 남편, 그리고 내 손에 든 와인

결혼 3년 차, 지현은 "투자가 급해서" 라며 500만 원을 빌려달라 했다. 나는 한 번도 거절한 적 없었다. 그 돈이 어디로 갔는지 나는 알고 있었다. 지현은 새로 생긴 남자와 호텔 방을 잡고 있었으니까.

문제는 그날이었다. 지현 남편이 혼자 찾아왔다. "와인 한 잔 할래?" 그는 내가 좋아하는 몰도바산 와인을 들고 있었다. 우리는 마셨다. 그리고 마신다. 그리고...

"당신도 알죠. 지현이가 우리 아들 학원비로 쓴다며 빌려간 돈이 어디로 갔는지."

그는 말했다. 나는 속으로 웃었다. 당신도 알죠, 당신 아내가 누구랑 잤는지.

그날 이후 우리는 더 이상 친구가 아니었다. 지현은 나를 의심했고, 나는 지현을 더 이상 믿지 못했다. 그녀의 질투는 나의 금기를 건드렸다. "네가 나한테 빌려준 돈으로 산 게 아니야? 내 남편이 너한테..." 라는 말이 서로의 목뒤를 조르기 시작했다.


마지막 대면, 문 앞의 레이스

"오늘 오후 3시, 집 앞으로 와줘. 다 끝낼 시간인 것 같아."

나는 갔다. 지현은 집 안에 있었다. 문 앞에는 유리구두 열쇠고리와, 반쯤 찢긴 레이스 브라가 놓여 있었다. 브라 안에는 메모가 있었다.

"이건 당신이 선물한 거야. 나는 이걸 입고 애인이랑 잤어. 당신도 봤잖아. 당신이 준 돈으로 산 룸도 당신이 준 돈이고, 나를 만족시킨 것도 당신이 준 돈이야. 그러니까 이건 당신의 몫이야."

나는 그 브라를 집어 들었다. 따뜻했다. 누군가의 체온이 아직 남아 있었다. 문 안쪽에서 지현의 남편이 말했다.

"이제 끝났어요. 당신도, 저도. 그리고 지현도."


우리가 버린 건 30년, 아니 욕망이었다

지현은 떠났다. 연락도, 흔적도 없이. 그녀가 남긴 건 유리구두와, 내가 빌려준 돈으로 산 레이스 브라뿐이었다. 나는 아직도 그 브라를 옷장 속에 숨겨두고 있다. 가끔 꺼내 보면, 그날의 체온이 아직도 느껴진다.

"우리는 서로를 너무 잘 알았어. 그래서 서로를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었던 거야."

지현의 침묵은 지금도 나를 조른다. 그리고 문 앞에 놓인 그 유리구두 열쇠고리는, 나를 향한 그녀의 마지막 선물이자, 저주다. "영원히 함께 걷자" 는 맹세가, "영원히 함께 지옥에 떨어지자" 는 의미로 돌변한 순간이었다.

나는 아직도 그날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그녀의 남편이 떠난 뒤, 문 앞에 놓인 레이스 브라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날 이후, 나는 지현과 같은 욕망을 품고 살아간다. 그녀의 남편이, 그리고 나의 욕망이.

"지현아, 너는 어디에 있니. 나는 아직도 여기 있어. 너의 욕망 속에, 너의 레이스 브라 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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