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식할 뻔했잖아.”
고양이는 살았지만, 유미의 폐는 그날부터 평생 느려터졌다. 회색털 루체가 투명 마스크 사이로 떨리는 가슴을 들썩일 때, 유미는 이미 ‘다음’을 알고 있었다. 고양이가 아니라 자신이 질식할 차례라는 걸.
민수는 문틀에 걸터앉아 담배를 꺼내 물었다. 불 붙은 초점이 유미의 눈동자를 스쳤다 가버렸다.
“야, 고양이도 너처럼 질식할 뻔했잖아.”
그가 웃으며 덧붙였다. “너랑 똑같이 혀 내밀고 비비던데.”
순간 가슴이 쪼그라들었다. 유미는 루체를 더 세게 품에 끌어안았다. 고양이의 몸은 차가웠지만, 민수의 시선이 닿는 지점만 화끈 달아올랐다. 숨을 크게 들이쉬자 마스크 끈이 살을 파고들었다. 이건 농담이 아니야, 속으로 중얼거렸다. 농담이라고 포장된 선고야.
“농담이라고? 너 몇 번째야?”
유미가 말했다. 목끝이 울렁거렸다.
“민수야, ‘이번엔’ 얘기하는 거지?”
“뭐가?”
“내가 질식할 뻔한 게 ‘이번’이라는 거. 지난번엔 뭐였어? 차 안에서 ‘창문 열지 말라’고 했을 때? 그때도 난 뒷좌석에서 숨죽이고 있었잖아.”
민수는 어깨를 으쓱했다. 담배를 탁 툭툭 털며 한 걸음 다가왔다. 유미의 머리카락을 살살 쓸어넘기며 속삭였다.
“그때는 네가 먼저 답답해했잖아. 내가 도와준 거야.”
도와준다는 말이 목덜미를 툭툭 두드리는 손끝에서 끝났다. 그 손끝이 떨어지자 유미의 피부에 흰 자국이 선명히 남았다. 마치 입맞춤 대신 남긴 질식 서명.
살아 숨 쉬는 은폐
사례 1. 혜진과 재우
오피스텔 7층, 새벽 두 시. 가습기에서 피어오른 수증기가 침대 위로 무겁게 내려앉았다. 혜진은 갑자기 콧속이 뜨거워지자 벌떡 일어났다. 흰 베개에 붉은 점이 찍혔다. 재우가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또 그래?” 재우는 혜진의 턱을 억세게 들어 올렸다. “숨이나 제대로 쉬지.”
“나 아닌데… 가습기 세기가—”
“누가 매일 밤 창문 닫으래? 너 민감해서 그래.”
손수건으로 코를 틀어막으며 재우가 웃었다. 붉은 얼룩이 번질수록 그의 눈이 반짝였다. 혜진은 그날 이후 수면클리닉에 갔다. 의사에게 들은 말은 단 한 줄이었다.
“당신이 잘못 숨 쉬는 게 아니에요. 당신을 잘못 숨 쉬게 만든 사람이 문제죠.”
사례 2. 수아와 도현
펫샵, 오후 세 시. 유리창 너머로 새끼 고양이 두 마리가 뒹굴었다. 도현은 수아의 손목을 꽉 잡고 가게 안으로 끌어당겼다.
“이 녀석들도 어쩌면 하루아침에 질식할 수 있어.”
“…왜 갑자기?”
“생명은 다 그래. 내가 잡지 않으면 네가 잡고, 네가 잡지 않으면 또 다른 누군가가.”
도현은 고양이 한 마리를 품에 안았다. 새까만 고양이의 목덜미를 움켜쥐자 작은 목이 툭 하고 꺾일 뻔했다. 수아는 도현이 아닌 고양이의 눈을 마주쳤다. 눈동자 속에서 자신의 얼굴이 비쳤다. 저 고양이가 나면 어떨까. 그러자 심장이 콩닥거렸다. 두려움이 아니라—질투였다.
농담, 그리고 숨통
농담은 손바닥 뒤집기처럼 작동한다. 한 번 뒤집으면 웃음이 나올지 숨이 멱일지 아무도 모른다. ‘질식’은 동시에 두 가지 시나리오를 품는다.
- 내가 조르는
- 내가 조르히는
듣는 순간, 몸이 스스로 자리를 가늠한다. 나는 어디쯤 서 있지? 그리고 뒤늦게 깨닫는다. 농담의 끝에는 늘 누군가의 목이 있다는 것을.
민수는 산소호흡기를 고양이에게 끼워 주면서 유미에게 말했다.
“아프면 숨 쉬는 법부터 배워야지.”
그 말이 끝나자 유미는 깨달았다. 이 집 안의 모든 산소는 민수의 허락 아래 돌아간다는 것을. 루체가 살아 돌아온 건 고맙지만, 다음번엔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숨구멍을 뚫는 순간
유미는 루체를 담요에 싸서 일어섰다. 민수가 다가와 팔을 막았다.
“어딜 가?”
“산책. 루체가 밖에 나가고 싶대.”
민수가 피식 웃었다.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밖 공기는 너무 차가워. 너도 질식할 수 있어.”
유미는 문고리를 돌렸다. 쿵, 쿵, 심장이 울렸다. 문이 열리는 순간 차가운 공기가 콧속을 파고들었다. 유미는 처음으로 스스로 숨을 쉬었다.
“나는 끊을래. 너도 끊을 수 있어.”
그리고 민수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그래, 한 번 해봐. 나는 네가 다시 헐떡거릴 때까지 기다릴게.”
문이 닫혔다. 유미는 루체를 품에 안고 복도를 걸었다. 산소통을 들고 있지 않아도 폐가 가볍게 떠올랐다. 아직 두려움은 남았지만, 질식할 뻔했던 고양이보다 더 확실하게 숨 쉬는 법을 알았다.
잔혹한 사실
농담은 늘 다음 질식을 예고한다. 그러니까—
- 누군가 “질식할 뻔했잖아.” 한마디 던질 때마다
- 우리는 그 농담의 어젠다를 뒤집어 본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이 웃고 있는가? 아니면 숨을 죽이고 있는가?
농담이 끝난 뒤에도 숨을 쉬는 사람은 드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