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뒷문 흡연장에선 늘 담배 한 대 필 시간이 부족했다. 지하철 막차 끊긴 새벽 두 시, 민수는 내가 맥주 한 모금 삼키기도 전에 불을 붙였다.
- 그래도 끊지 못하는구나.
- 너도 마찬가지잖아.
참을 수 없는 잠깐의 침묵. 민수가 연기를 내게 내뱉으며 말했다.
- 네가 뭘 해도 괜찮아.
숨이 멎을 뻔했다.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 파렴치한 허가였다.
입맞춤 직전의 시한폭탄
사랑한다는 선명한 계약서다. 네가 뭘 해도 괜찮아는 계약서를 태우는 불꽃이다.
전자는 책임을 수반한다. 후자는 전적으로 내게 책임을 돌려놓는다.
'네가 어떤 선택을 하든 그 선택이 너를 해치지 않도록 내가 지키겠다'는 말이 아니라는 걸, 그때 나는 알았다.
그건 '네가 나를 해치든, 나를 버리든, 나를 속이든, 내가 그걸 참아낼 테니 마음껏 해봐' 같은 말이었다.
첫 번째 실화: 유리의 3월 14일
유리, 29세, 디자인 회사 AE. 그녀는 화이트데이 저녁, 아직 60일밖에 안 된 관계의 남자와 분수광장 벤치에 앉아 있었다.
- 나는 사실... 오늘 다른 사람이랑도 만날 수 있었어.
- 그래?
- 너 화날 줄 알았는데.
- 화날 수도 있겠지만... 네가 뭘 해도 괜찮아.
유리는 그날 밤 그의 집에 갔다. 침대 시트에 얼룩진 초콜릿이 아직 녹지 않았다. 그는 유리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속삭였다.
- 너는 지금도 다른 사람 생각할 수 있어. 나도 참을 수 있어.
그는 진심이었다. 그래서 더 무서웠다. 유리는 4월이 되기 전에 그를 떠났다. 그러나 그 말은 계속해서 귓가에 맴돌았다.
두 번째 실화: 현우의 지하 주차장
현우, 31세, 외국계 컨설턴트. 그는 썸녀와의 첫 차량 섹스를 시도하던 날, 지하 주차장 추적자에게 들켰다.
보안요원의 손전등 불빛이 창문을 가르는 순간, 썸녀가 말했다.
- 우리 둘 다 망했네.
- 아니야.
- 너도 내려야 할 텐데... 어떡하지?
- 네가 뭘 해도 괜찮아. 나 혼자 내려갈게.
현우는 혼자 보안실에 끌려갔다. 벌금 10만 원. 회사에 알릴까 말까 고민하던 보안요원 앞에서, 현우는 그녀가 보내준 메시지를 봤다.
정말 괜찮아? 나 없어져도?
그날 이후 현우는 그녀를 다시 만나지 못했다. 하지만 그 말 한마디 때문에 계속해서 그녀의 SNS를 들여다보게 되었다.
금기를 먹는 방법
우리는 왜 이토록 '허용'에 홀린 걸까.
그건 결국 나를 포기하는 가장 아름다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내 경계를 넘어가도 괜찮아'는 말은 곧 '내가 없어져도 괜찮아'와 다르지 않다. 그리고 우리는 누군가의 완전한 포기를 목격할 때 가장 격렬하게 욕망한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해리성 허용'이라 부른다. 어린 시절 부모의 일관되지 않은 경계에서 자란 사람들이, 불확실한 허용에 매혹되는 현상이다.
불확실할수록 중독성은 강해진다. 마치 러시안 룰렛처럼.
왜 우리는 이것에 끌리는가
정해진 규칙 따위는 지루하니까.
사랑한다는 말은 그 자체가 계약이다. 하지만 '네가 뭘 해도 괜찮아'는 계약을 불태우는 말이다.
이 말은 듣는 순간 네가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방어막을 무력화시킨다. 나를 해치는 선택을 해도, 나를 배신하는 선택을 해도, 결국 모두 참아낼 자신이 있다는 말이니까.
이건 사랑이 아니다. 이건 소멸이다.
그리고 우리는 누군가가 우리를 위해 소멸하는 장면을 목격할 때 가장 깊은 곳에서 떨린다.
그 떨림이 사랑이라 착각하는 거다.
정말로 네가 뭘 해도 괜찮은 사람이 있다면, 그건 그 사람이 진심으로 너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미워해서라는 걸, 너는 언제쯤 깨닫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