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차 앞으로 뛰어들면, 나는 울다가도 핸드폰을 들어 그에게 먼저 연락할 거야."
수진은 그 말을 속삭이며 잠든 연인의 뺨을 한 달가량이나 어루만졌다. 새벽 두 시, 방 안은 스탠드 한 그루만 살아 있었고, 숨소리는 이미 교착 상태. 그녀는 말을 이었다. 얼마나 울까, 세 시간? 네 시간? 그리고는 세상 누구도 모르게 휴게실 복도 끝에서 남자 동료의 허리를 붙잡을까.
무대 뒤에서 숨 죽인 계산
‘그가 없어지면 내 상처가 얼마나 커 보일까. 클수록 나는 더 용서받겠지.’
우리는 모두 상상한다. 연인이 사라진 빈 자리를, 슬픔이 아니라 지분 계산의 연습장으로. 그 빈자리가 내게 얼마나 큰 권력을 줄지, 얼마나 오래 이용할 수 있을지.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당신은 일단 운다. 그건 상식이다. 하지만 눈물이 채 마르기 전, 누군가의 팔을 떠올리는 순간이 온다. ‘나는 괜찮은 척해야 해’라는 자기 연민이, 실은 ‘나는 빨리 괜찮아져야 해’라는 공포의 반사작용이다.
세 실제 같은 이야기
1. 미라는 눈물의 양을 재다
미라는 남자친구 현수와 한강변을 걷다 문득 던졌다.
- 너 내일 사고로 죽으면 나 얼마나 슬퍼?
- 미쳐버릴 정도로.
- 정말? 근데 사흘 뒤에 술집에서 네 동아리 후배랑 키스하면?
현수는 웃었다. 농담이라고. 그런데 미라는 실제로 캘린더에 빨간펜으로 동그라미를 그었다. 눈물의 양이 줄어드는 날짜를. 열흘째, 열아홉째, 서른두 번째. 숫자는 커질수록 그녀의 불안도 커졌다. ‘내가 그렇게 금방 괜찮아진다면, 네가 내 인생에서 차지하던 비중은 얼마나 작았던 거야.’
그녀는 잠든 사이 현수의 휴대폰을 열어 ‘사고’라는 키워드로 검색 기록을 살폈다. 보험금, 유족연금, 그리고 ‘애인 사망 후 재혼’까지. 눈물의 양을 재던 여자는 뒤늦게 깨달았다. 자기가 두려워하는 건 상대의 죽음이 아니라 상대의 흔적이 자신 안에서 사라지는 속도였다.
2. 재민은 장례식장에서 다른 여자를 보다
재민의 약혼자 수아는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장례식 사흘째, 재민은 수아의 대학 동창 혜진이 다리를 괴고 서 있는 모습을 보았다. 검은색 치마, 눈시울 붉은 눈, 흔들리는 발끝.
재민은 그녀의 어깨를 토닥였다. 이건 장례식 장면에서 가장 음침한 음모라는 걸 알면서도. 혜진의 눈물이 그의 셔츠 소매를 적셨다. 그 순간 재민은 속으로 질문했다. ‘내가 지금 슬픔에 압도되는 건 수아의 죽음 때문인가, 아니면 이 여자가 나를 안아준다는 미래 때문인가.’
삼일장 끝날, 재민은 혜진에게 연락했다. ‘같이 술 한 잔하지.’ 그리고 일주일 뒤, 수아의 유품 정리를 끝낸 날 밤, 그는 수아가 사랑하던 이불 위에서 혜진과 잤다. 내가 이 침대를 두 번째로 점령한 순간, 수아는 처음으로 내 안에서 완전히 사망했다.
왜 우리는 이런 상상에 홀린 걸까
인간은 본래 슬픔의 가치를 계산한다. 상대가 사라지면 내게 주어지는 권리, 연민, 자유, 그리고 새로운 선택지. 이미 1980년대 실험에서, 상대가 죽었을 때의 슬픔보다 얼마나 오래 슬퍼야 보기 좋을지를 가늠하느라 뇌 활동이 더 뜨거워졌다. 우리는 미래의 슬픔을 예행연습하며, 실은 그 슬픔을 지배할 방법만을 묻는다.
금기를 품은 욕망은 밀실이다. 그 밀실 안에서 우리는 상대의 죽음이 아니라 자신의 연민에 대한 갈취를 꿈꾼다. ‘내가 얼마나 아플지’는 ‘나는 얼마나 특별한지’의 가장 어두운 측정이다.
숨겨진 질문
너는 내 죽음 뒤에 얼마나 오래 네 이름을 울부짖을까. 아니, 얼마나 빨리 다른 누군가의 이름 속에 숨을 거냐. 그리고 그 사이 네가 두려워하는 건 내가 아니라 너 자신이 느낄 비루함이란 걸 알고 있니.
가장 잔인한 건, 우리 모두 이미 답을 알고 있다는 점이야. 어젯밤 그대가 남겨 둔 검색 기록 속에, 아직도 당신 이름 대신 다른 이름이 떠오를까 봐 바들바들 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