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장 나가면 안 돼?”
나는 그 말을 다시 씹었다. 술집 옆 골목, 빗방울이 맺힌 유리창 너머로 보이던 그녀의 눈빛.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 휴대폰이 울렸다. 남자 친구라고 했다. 아니, 전 남자친구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대답 대신 어색하게 웃으며 뒷문으로 사라졌다. 나는 한숨 돌릴 틈도 없이 그녀의 향기만 남은 공기를 들이마셨다. 아직 끝난 게 아니라고 속삭였다.
뒤늦게 따라잡으려는 손끝
빗물이 머리끝으로 흘러내렸다. 나는 지도 앱을 열었다. 실시간 위치가 꺼져 있었다. 두 시간 전까지만 해도 우린 같은 침대에 있었는데. ‘혹시나’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뒤덮었다. 혹시나 그녀가 돌아올까. 혹시나 내가 한 걸음만 더 내디뎠더라면.
나는 궁금함이라는 이름의 독을 마신다. 그녀가 누구와 있을지, 무슨 얘기를 나눌지. 상처받는 걸 알면서도 더 깊이 파고든다. 왜냐고? 사라진 뒤에야 비로소 뜨거워지니까.
실화처럼 누군가의 흔적
민석은 30분마다 화장실에 들어가 인스타그램을 새로고침했다. 지은님의 프로필은 여전히 비공개. 지난주까지만 해도 하루에도 여러 번 ‘좋아요’를 주고받으며 둘만의 비밀 코드를 쌓았다. 그러다 어젯밤, 지은님이 갑자기 “우리 좀 쉬자”는 메시지를 보냈다. 민석은 바로 답장하지 못했다. ‘쉬자’가 어떤 뜻인지 고민하는 사이 30분이 흘렀고, 메시지는 회색 체크표시로 남았다.
새벽 두 시, 그는 지은님이 자주 가던 편의점 앞에서 쪼그려 앉았다.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초췌했다. ‘도대체 뭐가 문제였을까.’ 숨겨놓은 감정의 종이는 이제 막바지에 다다랐다. 폭풍 검색 끝에 지은님이 남긴 한 댓글을 발견했다. “진수야 고마워.” 민석은 그날 밤 진수라는 남자의 프로필 사진을 200번은 더 클릭했고, 새벽 네 시가 되어서야 눈을 붙였다.
또 다른 남자, 준영. 그는 연애 초반의 설렘보다 결말의 쓴맛에 더 익숙했다. 이번엔 ‘수진’이라는 여자. 둘은 사내 동호회 모임에서 만났다. 수진은 준영이 좋아하는 맥주 브랜드를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우연”이라고 했지만 준영은 기억한다. 한 달 전 수진의 SNS에 자신이 들고 있던 맥주 캔이 찍혀 있었다. 그때부터 준영은 수진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수진이 퇴근길에 어떤 버스를 타는지, 점심시간에 어디서 샐러드를 사 먹는지. 준영은 노트에 적지 않아도 머릿속 지도로 그녀의 하루를 외웠다. 그러다 수진이 며칠 연휴를 내며 연락이 끊겼다. 준영은 수진이 말없이 떠난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발견했다. 제주도 바닷가 사진. 그 옆엔 남자의 팔이 겹쳐 있었다. 이제는 놓아줘야 하나. 준영은 스마트폰을 꺾었다. 그러나 이튿날, 그는 비행기표를 샀다. 제주도행. 집착이라는 단어는 아직 그의 사전에 없었다.
욕망의 해부
왜 우리는 사라진 이를 더 환히 그리워할까. 심리학책은 ‘손실 회피 편향’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책은 말하지 않는다. 손실이 아니라 잠재 가능성 때문이라고. 아직 다 채우지 못한 퍼즐 조각을 만지작거리며 더 큰 상상의 지도를 그리게 된다. 누군가가 열어 둔 문의 틈새를 보며, ‘내가 조금만 더 들어갔더라면’이라는 유혹에 사로잡힌다.
나는 그녀를 좋아한 게 아니라, 내가 상상한 그녀를 사랑했다. 그 편이 더 완벽하니까.
금기를 품고 걷는 밤
사람들은 추적을 나쁜 행동이라 말한다. 하지만 그건 말이 쉽다. 실제로는 누구나 한 번쯤 지하철 역에서 내려오는 사람들 속에서 그의 모자끈을 찾아본다. 혹은 그녀가 단골로 산다는 카페 앞을 지나치며 유리창에 비친 뒷모습을 확인한다. 욕망은 정의롭지 않다. 그저 뜨겁고 끈적일 뿐. 우리는 그 끈적임을 두려워하면서도 끝내 손에서 놓지 못한다. 금기의 맛이니까.
두 번 다시는 올 수 없는 문
아직도 나는 가끔 그녀의 동네를 지난다. 단골 떡볶이집 국물 냄새가 나면 발걸음이 저절로 멈춘다. 애초에 문을 더 세게 두드렸더라면, 혹은 문 앞에서 발버둥치며 내일을 약속했더라면. 아니, 그건 아니다. 우리가 말하는 ‘더 추적했더라면’은 어쩌면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놓친 게 아니라, 영원히 갖지 못할 가능성에 대한 슬픔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당신은 언제쯤 스마트폰을 내려놓을까. 아니, 내려놓고 나면 그녀가 어느 골목으로 사라졌는지를 평생 떠올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