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나 없이는 하루도 못 산다더니, 결국 먼저 등 돌린 건 너잖아"
지하 주차장, 차량 사이로 새어드는 형광등 불빛만이 우리를 비춘다. 지안은 내가 내뱉은 말을 되뇌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난다. 나는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선, 불 붙이지도 못한 채 다시 말을 쏟아낸다.
"그러니까 너도 똑같아. 다 똑같은 거야. 사랑한다고? 그게 뭐, 식어버린 커피처럼 차갑잖아."
그날 밤, 지안은 울지도, 화내지도 않았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차에 올랐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메아리처럼 길게 울렸다. 나는 여전히 불 붙이지 못한 담배를 한 입 베어 물었다.
내 안에 숨겨둔 서슬 퍼런 즐거움
알고 있었다. 말이 나가자마자 후회할 거라는 걸. 그럼에도 입이 멈추지 않았던 건, 사실 또 한 번 망쳐버렸다는 사실에 안도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제 끝났구나. 더 이상 실망시킬 일도, 지켜야 할 약속도 없어.'
어린 시절, 부모님의 다툼을 지켜보며 나는 깨달았다. 깨진 유리잔 위를 맨발로 걷는 것보다, 스스로 유리잔을 떨어뜨리는 쪽이 덜 아프다는 걸. 먼저 부서뜨리면 상처의 주도권이라도 쥘 수 있다. 지독한 착각이었지만, 12살의 나는 그걸 깨닫지 못했다.
연애를 시작할 때마다 나는 미리 종말을 상상했다. 그 상상의 끝에서 지안의 얼굴이 선명해졌다. 그래서 차라리 내가 먼저 부숴버렸다. 그래야 떠나는 사람이 아니라, 버리는 사람이 되니까.
민서는 3개월마다 연락했다
첫 번째 사례, 민서. 올해 나이 서른셋, 광고회사 기획자. 그녀는 매번 똑같은 메시지를 보낸다. '잘 지내?', 단순한 인사 같지만 그 안에는 끝없는 자기혐오가 깔려 있다.
민서는 5년 전, 대학 동아리 선배인 현수를 만났다. 현수는 민서가 운전면허 시험에 떨어진 날, 기다렸다는 듯이 등장했다. 첫 키스는 방향지시등이 깜박이는 차 안에서였다. 민서는 그날 이후 매일 현수를 찾아갔다. 하지만 3개월이 지나자 민서는 문득 두려워졌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도 만날까 봐.'
그래서 먼저 폭탄을 터뜨렸다. 현수의 전 여자친구 이야기를 꺼내며, "너는 나한테 완전하지 않아"라고 말했다. 현수는 억울하다며 울었다. 민서는 그 눈물을 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제 나를 떠나겠지, 다행이다.'
그런데 현수는 떠나지 않았다. 계속 연락했고, 민서는 더 이상 뾰족한 말을 찾지 못해 3개월마다 극적으로 등장했다가 사라지는 습관을 들였다.
두 번째 사례, 재혁. 서른다섯, 바리스타. 그는 자신이 먼저 차버린 연인들과의 대화를 녹음해서 폰에 저장해둔다. 지하철에서 혼자 들으며 반복해서 들었다.
"너 때문에 숨도 못 쉬겠어, 그냥 끝내자."
재혁이 26살 때, 첫사랑 혜진과 헤어졌다. 사실 재혁은 혜진이 먼저 이별을 통보했다. 하지만 재혁은 자신이 끝을 맺었다고 기억을 조작했다. '내가 먼저 끊어냈으니까, 떠난 건 내가 아니라 너다.'
그날 이후 재혁은 모든 관계를 똑같이 끝냈다. 질투, 의심, 안전하지 않음을 앞세우며 미리 종말을 쓰는 거다. 그러면서도 폰 속 음성 파일들은 절대 지우지 않았다. 끝을 맺었다는 착각을 되새기며 살았다.
우리는 왜 멈추지 못하는가
심리학자들은 이걸 '자기실현적 예언'이라 부른다. 실제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두려움 때문에 먼저 행동함으로써 그 두려움을 현실로 만드는 것.
하지만 여기엔 더 깊은 욕망이 숨어 있다. 죄책감의 달콤함. 내가 먼저 상처 주면, 나중에 되돌아올 때 '용서'를 요구할 수 있다. 용서는 결국 나를 다시 중심에 놓는 방법이다.
'내가 너를 다시 받아주면, 그만큼 너는 나에게 빚진다.'
우리는 버림받는 것보다 버리는 쪽이 낫다고 믿는다. 버림받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지만, 버리는 쪽은 '왜 그랬는지' 설명할 수 있으니까. 그 설명의 자리를 아직 포기할 수 없다.
너도 아직 그 자리에 있니
지안은 지난주, 내가 혼자 있을 때 집 앞에 왔었다. 모르는 척 지나쳤지만, 그림자가 너무 길어서 알 수 있었다. 나는 창문을 열지 못했다. 담배를 입에 물고선, 이번엔 불을 붙였다. 연기가 천장까지 차올랐다.
'내가 다시 사과하면, 지안은 돌아올까. 아니, 이미 너무 많이 부서뜨려서 아무것도 남지 않았을까.'
아직도 나는 첫 키스했던 그 차 안에서 멈춰 있다. 방향지시등이 깜박이는 소리, 조용히 울리는 라디오, 그리고 지안이 내 손등을 어루만지던 순간. 그때로 돌아가면 다르게 할 수 있을까.
아니, 아마 똑같을 거다. 다시 똑같이 부서뜨릴 테니까. 왜냐하면, 지긋지긋하게도 익숙한 그 통증이 없으면, 나는 나 자신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