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문 앞에 선 꼬마는 “오빠”라고 불렀다
- 너희 엄마 누구야?
- 아, 아빠가... 아빠가 여기로 오라고...
문 손잡이를 움켜쥔 내 손이 차게 떨렸다. 열한 살, 온몸에 아빠를 닮은 아이가 서 있었다. 눈꺼풀 하나 깜빡이지 않고 나를 올려다보는 눈빛, 그 눈빛이 너무 닮아서 숨이 막혔다.
욕망의 해부: 왜 나는 그들을 미워하는가
너희는 아무 죄 없어. 알고 있어. 하지만 나는 너희가 세상에 나온 사실 자체를 지울 수 없어.
아빠가 바람을 피웠다는 걸 알게 된 건 엄마가 병원 침대에 누워 있던 날이었다. 팔목에 새긴 흉터, 약 봉투 안 수북한 수면제. 나는 그때 열일곱이었고, 아빠는 이미 다른 집에서 어린 아이를 두고 있었다.
나는 지독하게 계산했다. 엄마가 쓰러진 해, 아이는 여덟 살. 아빠는 엄마 곁에 앉아 눈물 짓는 척하면서도 그 아이의 첫 입학식에 참석하고 있었다.
미움은 분수령이 있었다. 아빠를 향한 게 아니었다. 아이들을 향한 거였다. 그들은 아빠의 결혼반지를 빼지도 않은 채 만들어진 생명이었다. 서로를 속이는 동안에도 계속된 욕망의 결말이었다.
실제 같은 이야기 1 - 지하철 3호선에서 만난 수진
봄이었다. 지하철 내부 유리창에 내가 반사되어 있었다. 내 옆자리에 앉은 여자아이가 조용히 말을 걸었다.
나 수진이야. 아빠는... 우리 아빠는 선우 씨 아빠래.
나는 고개를 돌렸다. 여덟 살, 아니 열여섯 살이 되어 있었다. 초등학생이라 생각했던 아이가 고등학생이 된 거였다. 아빠가 키워왔던 시간이 내가 모르는 동안 흘러 있었다.
수진은 손에 쥔 편지를 내밀었다. 엄마가 썼다며. 봉투에는 아빠의 새 부인 이름이 적혀 있었다.
엄마가 선우 오빠한테 꼭 전해달래. 미안하다고.
나는 편지를 찢었다. 천천히, 조용히, 유리창에 비친 수진의 표정 하나하나 지켜보며. 차갑게, 하지만 확실하게.
수진은 울지 않았다. 그저 “알겠어요” 한 마디 하고 다음 역에서 내렸다. 나는 창밖으로 그녀가 사라지는 걸 봤다. 아주 오랜 시간.
실제 같은 이야기 2 - 결혼식날 나타난 세 남매
나도 장가를 들었다. 아내는 아빠의 과거를 모른다. 아니, 모르게 했다. 그녀가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는 순간, 예식장 입구에 세 아이가 서 있었다.
가장 큰 아이는 스무 살, 작은 아이는 열세 살.
우리 아빠가 못 오게 해서... 우리가 대신 왔어요.
아빠는 초대하지 않았다. 철저하게 차단했다. 하지만 그 아이들은 알아냈다. SNS 사진 하나하나 추적해서 찾아낸 거였다.
나는 결국 경호원을 불렀다. 아이들을 밖으로 나가게 했다. 아내는 “누구냐”고 물었고, 나는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대답했다.
그날 밤, 아빠는 전화로 소리쳤다.
너는 인간이 아니야! 그 아이들은 네 동생이야!
나는 냉정하게 말했다.
그럼 엄마는? 엄마는 누군가의 딸이자 누군가의 아내였는데, 왜 혼자 죽어야 했죠?
왜 우리는 이것에 끌리는가
우리는 부모를 용서하는 게 아니라, 부모를 죽이지 않는 것만으로도 살아남는다.
심리학자 피아제는 ‘도덕적 이기주의’라는 말로 아이들의 세계를 설명했다.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그것이 깨질 때 우리는 처음으로 분노를 배운다.
나는 단순한 분노를 넘어섰다. 아빠를 향한 복수가 아니었다. 아빠가 만든 ‘가족’이라는 단어를 완전히 부정하고 싶었다. 그들이 존재하는 한, 엄마의 죽음은 실제보다 훨씬 쓸쓸해진다. 엄마는 아무도 지키지 못한 채 죽었고, 나만이 그 고독을 책임지고 있다.
우리는 왜 무면죄배인 아이들을 미워하는가. 그 이유는 단순하다. 그들은 상처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빠의 거짓말에 의해 태어났지만, 그 거짓말을 전혀 모른 채 행복하게 자랐다. 그 행복 덕분에 나의 파괴를 완성한다.
마지막 질문
수진이는 아직도 한 달에 한 번씩 내 회사 앞에서 서 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저 한 시간씩 서 있다가 떠난다. 나는 그 모습을 매일 CCTV로 확인한다. 왜 나는 그 아이를 끌어안지 못하는가.
그리고, 당신이라면 아빠의 죄를 떠안은 채 태어난 아이들에게 문을 열 수 있을까. 아니, 당신은 아빠의 두 번째 가족을 영원히 거부하는 내가 정당하다고 말해줄 수 있을까.
나는 지금도 매일 밤 눈을 뜬다. 문 앞에 아이들이 서 있다는 환상 때문에. 그리고 나는 매번 문고리를 돌려 잠근다. 그 순간, 나는 아빠를 닮아있음을 깨닫는다. 그가 엄마에게 했던 것처럼, 나는 그 아이들에게 차가운 문을 닫는다. 똑같은 인간이 되어가는 소름 끼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