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심리연구소 사랑과 연애의 심리학

내가 너 없이는 단 하루도 못 살아, 그 말이 또 다른 누군가의 귀에도 살아 있었다

죽음을 담보로 한 고백이 왜 이토록 달콤하게 다가올까. 여자들이 위험한 사랑의 미로에 기꺼이 발을 담그는 순간을 낱낱이 파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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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안에서 내가 숨을 멈춘다 해도, 나는 너의 옆자리에서 그렇게 죽을 거야."

회사 지하 주차장, 형광등이 깜박이는 끝자락. 지훈이 민정의 손등을 살짝 어루만지며 속삭였다. 그의 손끝이 그녀의 손등을 스치는 순간, 민정의 허벅지 안쪽에선 미지근한 전기가 흘렀다. 새까만 죽음이, 이렇게 따뜻하게 다가올 줄이야. 같은 팀 남동료의 연인이라는 사실은, 그때는 시한폭탄 대신 화려한 불꽃놀이처럼 다가왔다. 지훈이 그녀의 흔들린 안경을 벗어주며, 이마에 닿던 냉기마저도 달콤하게 녹아내렸다.


죽는다는 단어가 닿는 순간, 나는 내 안에 숨겨왔던 반란을 느꼈다. 지훈 같은 남자들은 알고 있다. 죽음이 약어로 들어오면 여자들의 뇌는 별의별 화학물질을 쏟아낸다. 죽음 = 절대 = 영원 = 나만의 남자.

단순한 수식이지만, 그 수식 앞에선 누구나 어린아이처럼 녹는다.

처음엔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민정은 지훈이 전 여자친구와 나눈 대화를 우연히 알게 됐다. 편의점 앞에서 피고 늘어진 담배 냄새, 그리고 지훈이 한 마디.

"널 떠나면 나도 끝이야. 진짜로."

그녀는 속았다. 단순한 말 한마디에. 그 말을 들은 순간부터 민정은 지훈의 눈빛 속에서 자신만의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지훈은 연기가 아니라 진심이라고 속삭였고, 그 진심이 뱀처럼 그녀의 귀를 타고 내려가 심장을 조여왔다.


민정의 일기장, 3월 12일.

오늘 지훈이 한 마리 새처럼 내 다리를 안았다. 그리고 말했다. 내가 죽어도 너 밖에 없을 거야. 그 말이 나를 죽은 자리에서 다시 살아나게 했다. 나는 비밀스러운 부인이 되는 거야. 당신의 등 뒤에서 숨죽이며 사랑하는 사람. 얼마나 비극적이고 아름다운가.

그녀는 두 달 만에 팀장과 헤어졌다. 그리고 지하 주차장에서 지훈과 처음으로 키스했다. 지훈의 혀가 그녀의 입천장을 간질일 때, 그는 다시 한 번 말했다.

"내가 너 없이는 단 하루도 못 살아."

그 말에 민정은 자신이 선택받은 특별한 존재라 믿었다. 사실 지훈은 그날 저녁 팀장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민정이 헤어지자고 했다며 울먹였다. 지훈은 팀장에게도 똑같은 말을 했다.

"형, 나도 이제 못살겠어."


서현은 지훈의 동창이다. 그녀는 6개월째 지훈의 옷장 속에 숨겨져 있다. 지훈의 실제 여자친구는 회사 동아리 후배 지아. 지아는 지훈이 자신을 위해 인생을 바꿨다고 믿는다.

지아의 일기장, 4월 3일.

오늘은 지훈이 선배 팀장님과 완전히 다퉜대. 팀장님이 술에 취해서 나한테 뭐라 했나 봐. 지훈이 팀장님 목을 잡았대. 내가 없으면 진짜 죽을 거야. 그런데 분명 뭔가 이상해. 지훈이 나한테서 눈을 피하는 거 같애.

지훈은 늘 그랬다. 누군가를 잃을까 두려워하며, 누군가를 온전히 갖지 못한다는 불안감으로 하루를 살았다. 그래서 그는 모두에게 똑같은 말을 했다.

"내가 너 없으면 안 돼. 진짜로."

그 말이 반복될수록 지훈은 더 많은 여자들을 가둬놓을 수 있었다. 각자의 공간에서 그를 기다리게 만들 수 있었다. 그는 누구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모두를 속였다.


죽는다는 말은 사실 내가 포기할 수 없는 욕망을 그에게 떠넘기는 거야. 나는 스스로를 포기할 수 없으니까, 그가 나를 위해 죽어주길 바라는 거지.

심리학자들은 이 현상을 죽음 동원이라 부른다. 상대의 죽음을 각인시키며 나의 소유욕을 정당화하는 방식. 더 깊이 들어가면, 이건 소유욕이 아니라 공포다. 진짜로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사람이 떠날까 봐 두려워서 미치겠다는 공포. 그래서 우리는 눈을 감는다. 지훈의 말이 반복되는 것을 알면서도, 그 말이 진짜일 수도 있다는 0.1%의 가능성에 목숨을 건다. 내가 특별하다는 착각, 내가 마지막이라는 환상.

서현은 이제 알았다. 지훈은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다. 그는 그저 누군가를 잃는 공포에 떨며 살아가는 아이일 뿐. 그래서 여자들을 모두 잡아두고 싶어 한다. 잃지 않으려고.


지훈은 어젯밤에도 똑같은 말을 했다. 전화 너머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내가 너 없이는 못 살아."

그 말을 들은 순간, 너는 무엇을 떠올렸나. 살짝 떨리는 그의 목소리. 너를 향한 간절함. 아니면 그 말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도 들렸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지금 그가 하는 말, 너는 진짜라고 믿고 싶은가. 아니면 너 역시 그를 믿지 못하는 걸까. 그래서 더욱 달려드는 건지.

들어봐, 네가 지금 받고 있는 그 전화. 그 목소리가 떨리는 이유는 너 때문만은 아닐지도 몰라. 어쩌면 그 떨림은 너에게서 느끼는 연민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에게서 느끼는 죄책감일 수도 있어.

그러니까 지금 이 순간, 네가 속삭이고 싶은 말이 나도 너 없이는 못 살아라면, 잠깐만. 그 말을 입 밖에 내기 전에, 네가 정말로 죽음을 담보로 삼고 싶은 사람이 그인지, 아니면 네가 놓치고 싶지 않은 환상인지를 먼저 확인해봐.

지훈은 여전히 어딘가에서 똑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너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 말이 너에게만 속삭여지길 간절히 바라고 있을지도 모르지. 그래서 우리는 또다시, 그 거짓말 같은 진심에 귀를 기울인다. 죽음보다 달콤한 거짓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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