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심리연구소 사랑과 연애의 심리학

남편이 원한 선택, 내가 지킨 태아의 한쪽 팔

‘완벽한 아이’를 강요한 남편. 그가 내민 낙태 동의서를 거부하고 한쪽 팔 없이 태어난 아이를 품은 엄마의 고백. 결국 부부를 갈라놓은 건 아이의 결함이 아니라 우리 안의 두려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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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원한 선택, 내가 지킨 태아의 한쪽 팔

"임신 20주, 유방 아래 오른팔이 없어요."

산부인과 의사는 조용히 말했다. 초음파 화면 위로 남편 준혁의 눈츰커진 붉은 국화처럼 퍼졌다.

아니지, 선천적 결손이니까 꽃이 아니라 
…구멍이야. 우리가 뚫어버릴 수 없는.

냉장고 위에 올려둔 결정

그날 밤, 준혁은 냉장고 위에 A4 용지 한 장을 올려놓았다. ‘태아 진단서’라는 말이 커다랗게 찍혀 있었다.

우리도 살고, 아이도 살고 싶다면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해.

그는 맥주를 홀짝이며 말했다. 맑은 잔 속 거품이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나는 그 말 속에 숨겨진 논리를 들었다. ‘완벽하지 않은 아이’를 낳으면 우리 모두가 불행해진다는 계산. 그리고 그 계산은 얼마나 단순하고도 잔인한지.

흰색 수건 vs. 붉은 장미

준혁은 사촌 언니 이야기를 꺼냈다. 다운증후군 아들을 키우느라 이혼한 언니. 그는 언니의 눈 밑 그림자를 설명하듯 말했다.

"유치원에서 아이 아빠 아니라고 놀렸대.”

나는 문득 생각했다. 그가 두려워하는 게 아이의 팔이 아니라 ‘우리가 완벽하지 않은 부모라는 증거’는 아닐까. 한쪽 팔이 없는 아이를 걷게 하면서 우리도 흔들릴 거라는 불안. 그 불안이 얼마나 질투로 변할지.


세실레의 선택, 미연의 선택

사례 1 | 세실레 (이름 변경), 34세, 인천

세실레는 남편이 보낸 문자를 아직도 스크린샷으로 간직한다.

수요일 오후 3:08
남편: 엄마랑 상의했어. 
우리 아이는 완벽해야 해.

그녀는 병원 복도에서 눈물을 삼켰다. 그리고 선택했다. 남편의 선택. 아이를 선택하지 않은 죄책감은 새벽마다 그녀의 가슴을 치는 ‘사지 않은 팔’이 되었다.


사례 2 | 미연 (실명 사용 허락), 29세, 성남

미연은 남편이 계약서를 내밀었다. ‘낙태 동의서’였다.

남편: 서명만 하면 돼. 
나중에 또 아이 낳으면 되잖아.

미연은 펜을 내려놓고 말했다.

"당신이 아이를 낳아준다면 서명할게."

싸움은 3개월 이어졌다. 결국 미연은 혼자 출산을 택했다. 아이는 한쪽 팔이 없이 태어났다. 병원에서 처음 본 남편의 눈동자는 차가웠다가, 아이가 울자마자 무너졌다. 그때 미연은 깨달았다. 남편이 두려워한 건 아이의 몸이 아니라 자신의 반응이었다. 결국 그는 아이를 안았고, 미연은 이혼서류 대신 가족사진을 냉장고에 붙였다.


왜 우리는 완벽함에 집착하는가

내가 사랑할 수 없는 아이는 없다 사실은, 내가 사랑받지 못할까 봐 두려운 거야.

결혼은 둘이 만든 제도지만, 자녀는 우리를 둘로 쪼개는 거울이다. 아이의 결함은 부모의 결함. 그래서 우리는 아이를 고치려 하지, 자신을 고치려 하지 않는다.

욕망의 핵심은 ‘완벽한 가족’이라는 환상. 그 환상은 결국 ‘부모로서 완벽하다는 착각’으로 귀결된다. 한쪽 팔이 없는 아이를 키우면서 우리는 결코 완벽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 깨달음이 두려운 것이다.


아직도 차가운 발가락

나는 아이를 낳았다. 이름은 하준. 작고 둥근 손바닥 하나와, 허공에 덜렁거리는 소매 한쪽.

준혁은 아이를 처음 안아보고 울었다. 그게 우리 부부가 함께 흘린 마지막 눈물이었다. 지금은 이혼 절차 중이다. 그는 말한다.

"내가 참 나빴지."

하지만 나는 아이의 팔이 아니라 우리 사이의 무언가가 잘렸다고 생각한다. 그건 아이를 낳기 전부터 부족했던 용기였을지도 모른다.


밤마다 나는 아이 발가락을 만진다. 한쪽 팔이 없어도, 열이 똑같이 따뜻하다. 그때마다 나는 되묻는다.

당신이라면, 사랑의 조건을 한 번이라도 바꿀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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