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였을까."
유리는 샤워 부스 문을 닫는 순간도 모르고 있었다. 수건을 집어 드는 손에 뭉게진 섬유가 스칠 때마다 코끝을 간질던 향기. 베이비파우더에 섞인 달콤한 자스민. 그녀는 4년 넘게 그 향기를 '세제 잔향'이라 믿어왔다.
첫 번째 냄새
화장실 바닥에 떨어뜨린 남편의 티셔츠. 검은 김으로 빼곡한 옷깃 사이로 흘러나온 건 차가운 비누향이 아니었다. 뜨거운 여름, 에어컨 없이도 살아있던 냄새. 이건 내가 쓰는 세제가 아닌데.
윤호는 거실 소파에 엎드려 스마트폰만 만지작였다. 그의 이마에서 흐르는 땀방울이 유리의 시선과 마주쳤을 때,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오늘도 늦겠네. 회식이니까 먼저 자."
뱃속에서 칼날이 돌았다. 회식이라는 단어가 입안에서 썩는다.
그녀가 사라진 밤
며칠 뒤, 윤호는 새벽 두 시에 들어왔다. 유리는 눈을 감은 채 체온을 느꼈다. 목덜미에 닿은 손가락에서 후회 같은 게 스며들었다.
지금도 그 여자 피부 냄새가 나니까?
어떤 향수를 뿌렸길래?
어디를, 얼마나, 얼마나 깊게?
그날 밤 유리는 남편의 뒷모습에 코를 묻혔다. 샴푸 냄새 따윈 지워버린, 믿을 수 없이 달콤한 침이 배어 있었다.
욕망의 해부
"왜 남편은 냄새를 지우지 못했을까."
그건 단순한 실수가 아니었다. 반대로, 그는 냄새를 남겨두길 원했다. 사소한 실수 하나로 모든 걸 폭로하길 바랐던 거다. 마치 숙제를 안 해온 아이가 마지못해 부모에게 들키길 기다리듯.
사람은 배신할 때도 사랑받고 싶어 한다. 윤호는 유리의 코끝을 통해 자신의 죄책감을 봉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제 삶의 반을 누르면서도, 끝내 부인을 버리지 못하는 연약함.
두 번째 사례: 혜진의 3년
혜진(32세)은 남편 성민의 러닝화를 처음 의심했다. 발뒤꿈치 안쪽에서 흘러나온 건 스웨터 섬유와 달리 끈적한 알코올 향이었다. 그녀는 매일 밤 그 냄새를 맡으며 성민의 걸음을 추적했다.
오늘은 지하철 2호선 냄새야.
어제는 흙먼지 섞인 잔디.
모레는... 아, 또 홍대 앞.
셋이 술 마신 날, 혜진은 성민의 동료 여자에게서 똑같은 알코올 향을 맡았다. 그녀는 거울 속 자신의 눈동자를 마주치며 생각했다. 나도 냄새를 품고 있었구나. 그날 이후 혜진은 집에 오면 먼저 샤워를 했다. 성민에게서 풍기던, 누군가의 피부에서 온 냄새를 지우기 위해.
왜 우리는 냄새에 끌리는가
인간의 후각은 가장 오래된 감각이다. 그래서 냄새는 기억보다 빠르다. 아무리 완벽하게 지웠다 싶어도, 코끝 한쪽에 남는 미세한 분자가 모든 것을 말한다.
배신자들은 의도적으로 냄새를 남긴다. 끝내 발각되길 원하는 심리학적 자기파괴. 냄새 하나로 모든 걸 끝내고 싶어 하는, 끔찍한 사랑.
다시, 유리의 방
유리는 드디어 수건을 찢었다. 하얀 섬유 사이에서 흘러나온 건, 그녀가 알던 모든 향기와는 거리가 먼, 다르고도 익숙한 냄새. 윤호는 침대 끝에 앉아 있었다. 둘 다 입을 열지 않았다.
그날 밤 유리는 남편의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아직도 그 냄새가 남아 있었다. 이제 끝이라는 걸 알려주는 냄새.
당신은 지금 이 순간도, 누군가의 냄새를 품고 있지는 않은가. 혹은 그 누군가의 냄새를, 다시는 지우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