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심리연구소 사랑과 연애의 심리학

샤워 중 흥얼거렸더니, 그가 내뱉은 첫마디

샤워 중 무심코 흥얼거린 한 곡이, 문밖의 연인에게는 과거의 상처로 들렸다. ‘벗은 목소리’가 드러낸 우리의 비밀과 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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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품 속에서 피어오른 노랫소리

따끈한 물줄기가 목덜미를 타고 흘러내릴 때, 나는 작은 노랫소리를 흘렸다. 리즈의 *Cruel Summer*. 딱히 의식한 건 아니었다. 창밖으로 스며드는 새벽 2시의 불빛, 샴푸 향기, 잠시 씻겨내려가는 피로가 어우러지니 화음이 절로 흘러나왔다.

— 그래, 너희가 헤어진 거 맞지?
문득, 낯선 목소리가 욕실 문 너머에서 툭 떨어졌다. 동공이 확장되었다. 모르는 척 씻고 있던 그가, 내가 흥얼거리는 사이 문틈 열고 있었다는 뜻인가. 나는 순간 조용히 됐다. 노랫소리는 멈췄지만, 심장박동은 샤워 물소리마저 먹어버릴 듯 요랩했다.

달콤한 간극, 검은 꿀

나는 세면대 앞에 선 채 눈치를 보았다. 방금 전까지 우리는 소파에 둘러앉아 맥주캔을 부딪치며 헤어진 전애인 얘기를 하고 있었다. 단순한 과거지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적어도 내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샤워할 필울 없다며 홀로 남아 있었다가, 문득 나의 은밀한 취향 하나를 훔쳐버린 셈이다.

> ‘리즈를 아는 여자는… 뭔가 깊이 아파본 사람 아냐?’
> 
> ‘그래서 나도 모르게 드러낸 나의 상처를, 이 남자는 지금 어떻게 소비하는 거지?’

두 개의 사례, 두 개의 침묵

사례 1. 지인 A(32세, UX 디자이너)

A는 집에 초대한 남자에게 샤워를 권했다. 화장실 문을 닫고 물을 틀자마자, 그녀는 예전에 자주 부르던 올드팝을 흥얼거렸다. 줄리 런던의 *Fly Me to the Moon*. 세월이 지나도 외울 수 있는 곡.

    — 혹시… 전 남친이 좋아하던 노래야?

욕실을 나온 그녀는 말이 없었다. 남자는 싱크대에 기대 앉아 맥주를 홀짝이며 다시 물었다.
    — 아니면 너희가 같이 듣던?

A는 수건으로 머리를 훔켰다. 단 한마디.
    — 그냥 내가 좋아하는 거야.

그날 이후 남자는 A의 집에 두 번 다시 발을 들이지 않았다. *‘내가 뭘 건드렸을까?’*라고 A에게 물었을 때, 그녀는 미소만 지었다. 상처를 들킨 것이 부끄러웠던 걸까, 아니면 그 상처를 건드린 사람에게 화가 났던 걸까. A는 말했다.
    — 그 순간, 내가 아닌 누군가를 떠올린 게 느껴졌어.

사례 2. 지인 B(29세, 바리스타)

B와 연인은 둘이서 휴양지 에어비앤비에 머물렀다. 어느 날 B는 샤워를 마치고 나오며 조용히 부른 노래가 있었다. *너의 번호를 눌렀어* 원곡이 아닌, 직접 바꿔 부른 가사. “너의 목소릴 들었어, 잊으려 애썼지만.”

연인은 한참 뒤 불쑥 물었다.
    — 그 가사… 누가 지어준 거야?
B는 말을 잊었다. 그날 저녁, 연인은 침대에 누운 채 B의 머리카락을 어루만지며 속삭였다. *‘그 노래, 네가 누군가에게 부르지 못한 말이었어?’*

결국 둘은 그 숙소를 하루 앞당겨 떠났다. 연인은 말했다. *‘네가 지금 내 곁에 있지만, 그 노래엔 다른 사람이 있더라고.’*

우리는 왜 이 질문에 떨리는가

샤워 중 흥얼거리는 노래는 말 그대로 *벗은 목소리*다. 물소리, 화장실 메아리, 반사되는 타일마저 감싸주니 어깨를 으시시하게 내리는 느낌. 그러나 동시에 방음이 안 되는 공간이다. 그래서 무심코 흘리는 멜로디 속에는 진심이 담긴다. 누군가 ‘뭘 들켰나’ 싶게 반사적으로 삼키는 것도 그래서다.

우리는 그 노랫소리를 통해 *과거의 잔상*을 맡아낸다. 누군가와 함께 들었던, 혹은 누군가에게 부르지 못한 가사. 상처받은 사람은 서로를 겹쳐본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 과연 나만의 것일까.’* 이 불안이 커질수록, 우리는 그 노랫소리를 더 선명하게 듣는다. 마치 **음란한 증거**를 찾아내듯.

이 지점에서 ‘샤워’라는 장소는 더 이상 몸만 씻는 곳이 아니다. *내면의 때*도 함께 씻기는 순간. 그리고 그때 흘러나오는 작은 음률은, 지워지지 않는 잉크가 되어 상대의 눈동안에 새겨진다.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향해

당신도 샤워 중 흥얼거린 적이 있을 것이다. 그때 당신이 떠올린 사람은 누구였나. 그리고 그 순간, 문틈에 서 있던 누군가가 당신의 과거를 들었다면, 그는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아니면, 당신은 혹시 지금 사랑하는 사람의 샤워실 문 앞에 서 있지는 않은가. 그가 부르는 작은 노랫소리를 듣고서, 당신은 과연 무엇을 떠올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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