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심리연구소 사랑과 연애의 심리학

결혼 이틀 만에 침대에 뿌린 물, 왜 우리는 여기서 가장 뜨거웠을까

침실 바닥에 고인 물, 뜨거운 향수 냄새, 그리고 시든 꽃다발. 결혼 48시간 만에 맞닥뜨린 ‘죽음’ 같은 공허는 어디서 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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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 호텔 침대를 가리키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민서는 병뚜껑을 풀어 물 한 병을 끝까지 들이켰다. 그리고는 아직도 몸에 남아 있는 드레스 위로, 남은 물을 쏟았다.
아, 시원하다. 두 손이 닿을 것 같은 거리. 신랑 지훈은 말없이 그녀의 드레스를 벗겼다. 물기는 벌써 스며들어 섞이지 않는 두 몸을 더 차갑게 식혔다.


첫날밤, 그래도 뜨거웠다고 생각했던 우리

그래도 뜨거웠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끓여지던 중이었을지도 모른다. 침대는 여기저기 찌그러진 킹 사이즈. 아침 룸서비스를 받으며 민서는 스마트폰으로 ‘결혼 첫날밤 사망 사고’를 검색했다. 화면이 번쩍일 때마다 지훈이 물끄러미 내리보는 눈빛에 급히 화면을 껐다.

“뭘 봐?”
“아무것도.”
“우리, 이제 아무것도 아닌 거야?” 침대 위에 흩어진 꽃잎이 축 떨어졌다. 진홍색 장미는 하루 만에 시들었고, 침대도 마찬가지였다.


욕망의 해부

사람들은 결혼 첫날밤을 두고 ‘마지막으로 뜨거워야 할 순간’이라 말한다. 그러나 민서는 그 뜨거움이 곧 끓는 물 위에 놓인 고기처럼 느껴졌다. 이제부터 한 번도 뜨거워질 수 없다는 공포. 그래서인지 첫날밤 민서는 뜨거운 물로 샤워를 했다. 피부가 붉게 익도록, 눈물이 섞여도 몰래 흘러도 괜찮도록. 불타는 듯한 관계가 되려 시든 침대 위를 차지당한 뒤, 사람은 더 뜨거운 무언가를 자신에게 쏟아붓는다. 물이든 향수든, 후회든.


실제 같은 이야기: 민서와 지훈, 그리고 다섯 번째 물병

민서와 지훈은 결혼식장에서 처음 마주쳤다. 아니, 정확히는 민서의 전 남자친구와 지훈의 전 여자친구가 자리를 비켜주는 사이, 식사 자리에 마주앉았다.

“우리, 여기서 나가면 다시 못 볼 거잖아.”
“그럼 지금이라도 누군가와 결혼하면 어때?”
“누군가?”
“나.” 그 말은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두 달 만에 청첩장이 돌았고, 시댁과 처가는 서로의 이름도 제대로 외우지 못했다. 신혼여행지 오키나와 리조트의 첫날 밤, 민서는 입에 맞지 않는 생선 타다끼를 먹다 체했다. 화장실에서 토하며 물을 마셨다. 물 한 병, 두 병, 세 병… 벌써 다섯 번째 물병이 비었다. 그녀는 민감하게 달아오른 자신의 피부를 만지며 속삭였다. ‘아, 나 지금 죽는구나.’ 죽음은 오지 않았다. 대신 침대만 죽었다. 시트는 눅눅했고, 베개는 식은 땀 냄새를 품었다. 지훈은 옆에서 코를 골았다.


듣는 이야기

새벽 두 시, 지훈이 잠든 사이 민서는 펜션 베란다에 나와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너머 친구의 목소리가 떨렸다.

“아는 언니 이야긴데… 결혼 이틀 만에 침대에 향수를 뿌렸대. 남편은 야근이래. 그녀는 네 번째 샴푸로 목욕하고, 다섯 번째 향수를 침대에 쏟았대.” 순간, 파도 소리만 들렸다. 친구가 작은 숨을 삼켰다. “유리컵 깨서 손목 그었다나 봐. 응급실에서 의사가 왜냐고 물었대. 그때 그 언니가… ‘몸이 시들어서요’라고 했대.” 민서는 이마를 난간에 기댔다. 바닷바람이 마른 입술을 스쳤다. 그녀는 지금도 침대에 뜨거운 무언가를 쏟고 있지는 않을까.


금기를 향한 집착

심리학자 롤로 메이는 말했다. 사랑은 죽음과 떼려야 뗄 수 없는 형제다. 신혼여행의 끝, 결혼의 끝, 혹은 침대의 끝. 그 끝을 향해 우리는 물을 붓고, 향수를 뿌리고, 몸을 데운다. 왜냐하면 그건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니까. 차가운 침대보다 뜨거운 물이 낫고, 시든 꽃보다 새까만 침대가 낫다. 결국 우리가 원하는 건 뜨거운 죽음이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뜨거운 유품 하나 남기고 싶은 욕망. 그래서 민서는 물을 쏟았다.


오키나바의 방 안, 지훈은 여전히 잠든 채다. 민서가 침대 한쪽에 털썩 주저앉는다. 시트를 만지자 물이 아직도 차갑다. 그녀는 조심스레 눈을 감고, 마지막 한 방울 뜨거움을 기억하려 애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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