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안은 가로등 빛이 가장자리만 희미하게 비춘다. 아직 와이셔츠 단추를 풀지 못한 민수는 유진의 뒷목을 내려다본다.
“오늘은… 괜찮아?”
유진은 잠시 눈을 뜬다. 그 눈동자는 마치 얼음장 위에 떨어진 촛불처럼, 흔들리면서도 시려다.
“좀 피곤해.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하니까.”
단 한마디. 그러나 그 한마디는 민수의 가슴을 관통한다.
후각
민수는 천천히 숨을 들이마신다. 유진이 뿌린 비누향이 머리카락 사이로 흘러내려 침대 시트에 스며든다. 향은 달콤하지만, 찬 공기 탓에 톡 쏘는 알코올처럼 코끝을 찌른다. 그 향기가 아침 리허설 때까지는 따뜻했는데. 어젯밤 웨딩 리셉션, 유진은 오랜 친구에게 안겨 웃다가 민수의 시선을 받자 갑자이 표정을 굳혔다. 환호 속의 한 줄기 소름—그 후로 향기에도 서늘한 끝맛이 낀다.
촉각
민수는 손을 뻗는다. 새하얀 실크 블라우스 단추 끝에서 0.5mm. 닿을 듯 말 듯한 거리. 손끝에 느껴지는 것은 고개 숙인 유진의 숨결조차 얼지 않게 만드는 정전기뿐이다. 지금 내 손끝이 그녀의 피부를 스친다 해도, 그녀는 아마 얼음 조각에 스친 바람처럼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을 것이다.
유진은 침대 끝으로 몸을 옮긴다. 그녀가 덮은 담요는 퍼프처럼 가벼운데도, 민수에게는 무거운 벽처럼 느껴진다. 냉장고 서랍 속에 들어간 느낌이다.
“…미안.”
유진이 아주 작게, 그러나 또렷이 말한다. 민수는 입을 다문다. 미안—어젯밤 리셉션장에서 그녀가 뱉었던 첫마디다. 친구가 건넨 장난스러운 입맞춤에 민수가 놀란 표정을 짓자, 유진은 먼저 고개를 돌렸다. 그 찰나의 불쾌감이 지금, 침대 한가운데를 깊은 균열처럼 가른다.
시각
민수는 조심스럽게 시선을 좁힌다. 유진의 눈꺼풀이 미세하게 떨린다—마치 눈을 감은 채 눈물을 참는 어린이처럼. 민수는 그 떨림을 보며 철저히 자신을 움켜쥔다. 그 눈꺼풀이 곧 살짝 열려, 나를 똑바로 마주친다 해도, 거기에는 이미 차가운 단어가 새겨져 있을 것이다.
민수는 침대 위로 몸을 뒤척인다. 천장은 어둠 속에서도 민수의 눈을 피한다.
후각
베갯잇에 얼굴을 묻는다. 향은 여전하다. 그러나 향기 속에는 유진의 체온이 빠진 공백이 선명하다. 그 공백이 내일 아침까지 계속될 것이다.
촉각
민수는 유진의 손등을 바라본다. 그녀는 주먹을 꼭 쥐어 아주 연약한 떨림을 만들어 낸다. 민수는 손을 내밀지 않는다. 손을 내밀면, 그녀는 반사적으로 손을 뺄 것이기 때문이다. 손등을 감싸는 일은 이제 금지된 지문 확인처럼 느껴진다.
“…잘 자.”
유진이 목소리를 더 낮춘다. 그 말은 침대를 넘어, 혼잣말처럼 스며든다. 민수는 대답하지 못한다. 대답할 수 없다. 그녀가 말한 ‘잘 자’는 곧 ‘떠나지 마’가 아니라 ‘오늘은 여기까지’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시각
민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유진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유진의 어깨는 조금씩 들썩인다. 울고 있다. 아니, 울고 싶어 참고 있다. 그녀의 과거 트라우마—고등학교 시절, 유진은 친한 오빠에게서 예상치 못한 고백을 받고 그 자리를 도망쳤다. 그때의 떨림이 지금, 민수와의 첫날밤에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그때처럼, 그녀는 또 도망치려 한다.
민수는 침대 시트를 꼭 쥔다. 시트는 여전히 차갑다. 그러나 이제 차가움은 온도가 아니라, 두 사람 사이에 생긴 틈새의 이름이다.
우리의 침대는 냉장고가 되었다.
우리의 사랑은 잠시 멈춘 것뿐이다.
우리의 욕망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오늘은 눈을 감아야 한다.
민수는 조용히 눈을 감는다. 그리고 아주 작은 소리로 중얼거린다—유진에게는 들리지 않을, 그러나 자신에게만 들리는 속삭임으로.
“…내일은, 다시 시작하자.”
그리고 방 안은 가로등 빛만 남는다. 하지만 그 빛마저 차가운 얼음 위에 떨어진 촛불처럼, 아주 조금씩, 조금씩 기다림의 온도를 높이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