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손등에 묻은 맥주 거품이 반짝일 때, 나는 이미 넘어간 뒤였다. 유리창 너머 공사장. 콘크리트 먼지가 아직 가시지도 않은 테이블 위에서, 그는 한 캔을 따며 내 옆구리를 톡톡 두드렸다. 손끝이 옷감을 퍼지게 하며 살결에 와닿는 순간, 숨이 멎을 뻔했다.
“니가 여기 있어주면, 나는 벌써 성공한 거야.”
술기운 때문인지 눈빛이 축 늘어져, 그 잿빛 창고 안이 홀연히 침실처럼 느껴졌다. 그날부터 나는 단 한 번도 “안 돼”라고 말하지 못했다.
믿음이라는 이름의 도박판
내 신용카드 한도는 380만 원이었는데, 그는 단숨에 비웠다. 다이닝 테이블이 아닌, 아직 뼈대도 드러난 공간에 놓인 노트북 화면에선 유튜브 검색창에 강남핫플 TOP10이 떴다. 그는 화면을 가리켰다.
“여기 우리 이름 올릴 거야. 너랑 나랑.”
그 말 한마디에, 카드를 한 장 더 넘겼다. 어떤 계산서도 없었고, 오로지 그의 숨소리만이 영수증이었다.
시나리오 1: 미진, 26살, 신림역 4번 출구
하루는 늦은 밤, 그녀가 남자친구의 공사장에 들어섰다. 문이 잠겨 있었지만 창문 밖으로 비치는 조명이 반짝였다. 남자친구는 땀범벅이 되어 있었고, 미진은 손등에 묻은 흙 냄새를 맡으며 말했다.
“오늘은 50만 원 더 들어갔대.”
그의 숨소리가 뜨거웠다. 미진은 이미 1,200만 원을 빌려줬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손등을 쓸었다. 피부가 닿는 순간, 미진은 눈을 감았다. 그녀의 신용은 그날 밤 조금씩 바스러졌다. 400점대로 추락한 신용 점수는, 그녀가 그의 손등에서 떨어진 먼지처럼 흩날렸다.
시나리오 2: 수진, 29살, 그가 사라진 아파트
그는 한때 카페 사업이 망한 뒤, 이번엔 카풀 앱을 만들겠다고 했다. 수진은 그의 목덜미 냄새를 맡으며 물었다.
“3천만 원이라는 게 확실해?”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라는 단어 하나에, 수진은 집 담보까지 잡았다. 그날 밤, 그녀는 그의 손가락이 자신의 손등을 톡톡 두드리는 느낌에 눈을 감았다. 손금 위로 그의 숨결이 닿는 순간, 수진은 이미 집을 잃은 것처럼 느꼈다. 2주 만에, 그녀의 집은 경매로 넘어갔고, 그는 다른 여자의 집으로 이사했다.
금기의 달콤함
왜 우리는 스스로를 속이며 사랑을 말할까.
‘사랑한다는 건, 함께 망가지는 거야.’
그 말은 가장 치명적인 착각이었다. 도파민은 사랑이 아니라, 손실의 가능성마저 짜릿하게 만들어준다. 내 돈이 아니라, 우리의 미래라는 말에 속는 것이다.
아직도 내 지갑 안에 남아 있는 건, 그의 명함 한 장과 신용불량자라는 낙인뿐이다.
그리고 그 잔향은, 나를 떠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