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남겨진 밤 3시 42분
냉장고 앞에 서서 물을 마시던 순간이었다. 반짝이는 화면에 떠오른 메시지. ‘아직도 잠 안 와? 나도 그래.’
이건 내 폰이 아니야.
그의 핸드폰. 충전 중이던 그것이 싱크대 위에 놓여 있었다. 잠금 해제는 안 되는데, 알림은 계속 떴다. 자꾸만.
처음엔 지나가는 웃음이라 생각했다. 누군가의 밤샘 톡. 그런데 그날 이후 매일 밤 똑같은 시간, 똑같은 문장이 떴다.
욕망의 해부: 숨겨야만 했던 이유
왜 숨기고 싶었을까?
그녀는 질문을 던지며도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숨기고 싶었던 건 그가 아니라 자신의 욕망이었다. 누군가의 밤샘 톡에 질투하는 자신. 그리고 그 질투를 확인하기 위해 매일밤 그의 폰을 확인하는 자신.
처음엔 우연이었다. 그러나 우연이 반복되면 의도가 된다. 그녀는 눈을 감고도 충전 중인 폰의 위치를 떠올릴 수 있었다. 오른손으로 서랍을 열어 충전케이블을 꺼내는 동작까지.
지유진의 이야기: 3월 15일, 4시 17분
"오늘도 왔네."
지유진은 침대 옆 테이블에 놓인 그의 폰을 바라봤다. 잠든 지 1시간 반. 그녀는 1년 전 3월 15일, 4시 17분에 받은 그 메시지를 아직도 기억한다.
‘보고 싶어. 지금 당장.’
보낸 사람: 김서준. 그의 대학 동아리 후배.
유진은 그날 밤 그의 숨죽인 탄식을 들었다. 처음엔 꿈인가 싶었다. 그러나 그의 손이 천천히, 그래도 분명히 그녀의 허리를 훑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그녀는 김서준에게서 온 메시지를 발견했다.
숨겨두고 싶었다. 하지만 손은 저절로 스크린샷을 찍었다. 그리고 이후 1년 동안, 그녀는 매일 밤 4시 17분에 그 스크린샷을 확인했다.
최민재의 이야기: 9월 22일, 2시 33분
"이건... 다른 거야."
최민재는 전화를 끊고 베란다로 나갔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한강의 불빛이 흐릿했다. 그녀의 눈에 띈 건 삭제된 메시지였다. 카카오톡에서 나온 ‘삭제된 메시지입니다’라는 회색 문장.
2시 33분. 그녀가 화장실에서 나오려는 찰나, 그가 재빨리 화면을 내렸다. 그녀는 그 문장만 봤다. 그러나 뇌는 자동으로 채웠다. 누군가의 이름, 누군가의 욕망, 누군가의 밤.
그날 이후 민재는 그의 ‘삭제된 메시지’에 집착했다. 왜 지웠을까? 무엇이었을까? 그녀는 그가 잠든 사이 그의 폰을 열어 삭제된 메시지 복구 앱을 깔았다.
살아 있는 누군가의 욕망이 그녀의 안에 흘러 들어왔다. 그녀는 그것을 마시고, 되새기고, 또 마셨다.
금기가 되어버린 정체성
우리는 왜 남의 욕망에 이렇게도 민감할까?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타자의 욕망은 우리 내면에 숨겨둔 욕망의 거울이라고. 우리가 그토록 파고들고 싶은 건 타인의 비밀이 아니라, 숨겨둔 자신의 금기일지도 모른다.
유진은 김서준에게서 온 메시지를 보며 느꼈다. ‘보고 싶어’라는 문장 속에 담긴 절망적인 욕망. 그 욕망은 유진 자신이 그에게서 받고 싶었던 말이었다. 민재는 ‘삭제된 메시지’를 보며 절망했다. 지워버린 욕망은 결국 들키고 싶었던 욕망이었다.
우리는 모두 남의 욕망에 끌린다. 그것이 자신의 욕망이라는 걸 알면서도. 왜냐고?
아직도 덮고 자는 이유
그 메시지를 확인하지 않으면, 어떻게 돼?
유진은 365일째 그 스크린샷을 확인한다. 민재는 120일째 복구된 메시지를 읽는다. 그들은 알고 있다. 확인하면 끝난다는 걸. 그래서 확인하지 않는다. 확인하는 척만 한다.
우리는 모두 금기의 끈을 놓지 못한다. 놓으면 우리는 다시는 그 욕망을 만날 수 없으니까. 그러니까 우리는 끊임없이 뒤척인다. 잠들기 위해선 그 메시지를 봐야만 한다는 거짓말을 하며.
그리고 내일도, 모레도, 다다음 주도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거짓말을 반복한다.
마지막 질문
너도 오늘 밤, 누군가의 메시지를 확인하러 일어날까?
아니면, 그 욕망을 확인하지 못해 결국 잠들지 못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