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님 여자친구분이시죠?”
“이렇게 예쁜 분 만나고 있었구만. 아직 소개 안 해줘도 되나?”
백화점 명품관 앞 수제자장면 집. 남편은 팔짱을 끼고 서 있었고, 나는 어색하게 손을 흔들었다. 그의 어머니는 나를 보며 미소 지으며 물었다. 나는 화장을 한껏 덧발라 웃었다. 우리는 이미 다섯 번째 설을 맞이한 부부인데.
“일단… 조용히 살자”
예식장 사진은 찍었지만, 초대장은 한 장도 보내지 못했다. 남편이 한 말이 지금도 귀에 선하다.
“우리 집안이 좀 복잡해. 일단… 조용히 살자.”
그래서 나는 친정 부모님 앞에선 맥주잔을 들고 웃었고, 남편 가족 앞에선 그저 ‘여자’로 존재했다. 결혼 한 달 만에 친정어머니 제사상에도 오르지 못했다. 남편은 떡국 한 숟가락을 떠먹으며 말했다.
“형이 아직 결혼을 안 해서… 너 올라가면 눈치 보실 거야.”
그러면 나는 누구지? 당신이 맹세했던 아내는?
“형수님… 아니 미영 씨!”
결혼 3년 차, 시댁 60잔치. 나는 연회장 뒷편 대기실에서 두 시간을 기다렸다. 남편의 사촌동생이 갑자기 들어왔다가 얼굴이 굳었다.
“아, 여기 계셨구나. 형수님… 아니 미영 씨!”
그날 나는 처음으로 알았다. 남편의 큰아버지가 나를 보는 눈이 싸늘하다는 걸. 내가 그의 ‘전 여자’와 닮았다는 걸. 그 여자는 남편의 가족에게 돈 떼먹고 사라진 전설 같은 존재였다.
숨겨진 진짜 이유
나는 그 사실을 안 뒤로 반년을 더 살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남편은 가족에게 나를 인정받지 못하면 헤어지자고 할까 두려웠다. 나도 모르게 빌미를 만들었다.
“우리가 결혼했다는 걸 알면 아버지가 돌아가실지도 몰라.”
나는 그 말에 녹았다. 죄책감이 사랑의 변명을 삼켰다. 주변 사람들에게는 차츰 ‘그 애 남자’로 불렸다. 이름 없는, 그냥 있는 여자.
숨겨진 아내의 욕망
우리는 왜 이 금기를 지킬까? 결국은 거절당하지 않기 위해다. 남편은 가족의 거절, 나는 남편의 거절.
‘내가 진짜로 사랑받을 만한 사람인가’ 하는 초조함. 그래서 나는 그의 지갑 속 가족사진을 꺼내본 적이 없다. 누가 있을까 두려워서. 어쩌면 그 사진 속에도 나는 없을지도.
신부의 눈물
지난주, 남편의 형이 드디어 결혼했다. 나는 예식장 로비에 서 있었다. 화려한 신부가 시어머니 손에 꽃다발을 받으며 웃었다. 나는 화장실로 가서 눈물을 닦았다.
나는 언제쯤 제대로 인사할 수 있을까.
마지막 질문
당신이라면, 사랑하는 사람의 가족 앞에서 얼마나 오래 ‘그냥 지인’으로 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