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까지만" 그녀가 말한 순간
유현은 침대 끝에 앉아 그녀의 발가락을 움켜쥐고 있었다. 손가락 사이로 살짝 스며나오는 체온, 그건 들어갈 수 있는 전부였다.
"끝까지는 싫어."
"끝이 어딘데."
"너는 이미 알잖아."
문장은 명확했다. 몸은 열려 있어도 미래는 닫혀 있다. 유현은 그녀의 허벅지 안쪽에 입술을 대면서도, 동시에 거대한 철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었다. 쾅. 그건 사내에겐 더 참혹한 음향이었다. 아무리 깊이 들어간들, 그곳은 오히려 더 깊은 곳으로 가는 지름길이 아니었다.
몸은 열렸지만 문은 닫혔다
침투라는 단어는 속임수다. 삽입의 깊이가 연결의 깊이인 양 착각하게 만든다. 그녀의 몸 안에 있어도, 유현은 여전히 그녀의 선택지 밖에 있었다. 그곳엔 이미 다른 인물이 자리 잡고 있었을 테니까. 혹은 아직 아무도 없지만, 절대 유현이 들어설 수 없는 영토일 테니까.
나는 그녀를 채우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녀가 나를 비우고 있었다.
그녀의 눈빛은 말했다. ‘당신은 지금 여기까지.’ 그 이상은 영원히 닿지 못할 미래의 영토다. 남자들은 그 영토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초조해진다. 열쇠는 없고, 문은 투명해서 안이 들여다보이지만, 접촉 금지라는 붉은 글씨가 선명하다.
가상의 부부, 실제의 방
사례 1: 준혁과 세린
준혁은 세린의 목덜미에 입맞춤하면서도 그날밤 계약서를 떠올렸다. 결혼 3개월 전, 세린이 내민 ‘자유로운 관계 보장 서약’.
- 상대방의 몸은 완전히 개방한다.
- 다만 미래 계획은 서로 간섭하지 않는다.
- 이 방에서, 시간은 항상 현재진행형이다.
준혁은 그 서류에 서명했다. 그리고 2년 만에 깨달았다. 그녀는 항상 젖혀지는 자세로 미래를 숨기고 있었단 걸. 그녀의 몸은 가장 깊은 곳까지 허용했지만, 그녀의 5년 후 일정은 여전히 검은색으로 블락되어 있었다. 세린은 점점 더 과감해졌다. 침대 위에선. 그러나 “내년엔 같이 갈 곳” 목록은 텅 비었고, 그 공백이 준혁의 심장을 조용히 파먹었다.
사례 2: 도윤과 ‘거기’ 없는 그녀
도윤은 6개월째 가슴에 이름 없는 문신을 새기고 있다. 여자의 이니셜도, 문장도 없다. 그냥 물음표 하나. 그녀는 아직 이름조차 말해주지 않았으니까.
"당신은 나를 끝까지 몰라도 돼."
"그럼 난 뭘 믿고 잠들지?"
"내 몸의 온도?"
그녀는 항상 어디선가 오다가 사라졌다. 뒷좌석에서 몸을 열고, 운전석으로 돌아가면 사라지는 유령. 도윤은 한 번도 그녀의 집 앞에 차를 세운 적이 없다. 대신 모텔 복도 끝에서 그녀의 뒷모습만 지켜본다. 그녀가 사라지면 복도가 입을 벌려 그의 미래를 삼킨다.
왜 우리는 닫힌 미래에 홀린가
정답은 간단하다. 들어갈 수 없는 곳을 끝없이 탐닉하면, 스스로를 무한대로 유지할 수 있기 때문. 들어가면 끝이 난다. 끝나면 죽는다. 끝나면 알 수 없는 미래가 실재로 굳어버린다. 그래서 남자들은 그녀의 몸 안에 있으면서도, 그녀의 미래 밖에 있기를 택한다.
뇌과학자들은 말한다. 미래 예측이 틀릴 때 도파민이 폭발한다고. 즉, 틀릴 확률이 높은 관계일수록 중독성이 강하다. 그녀가 ‘이건 사랑이 아니야’라고 말할수록, 그 말이 거짓일 가능성이 높아질수록, 남자의 뇌는 거꾸로 불타올랐다.
너는 그녀 안에 있지만, 그녀는 너의 미래에 없다
문이 잠긴 방 앞에서 당신은 아직도 손목을 비벼대고 있다. 열쇠가 없는 걸 알면서도. 아니, 열쇠는 있는데 당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주머니에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래서 당신은 매번 그녀 안으로 들어가면서, 동시에 영원히 밖으로 내몰리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끝까지 가려 하지 않는 걸까?
왜우리는결국문을열지않으려는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