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제안은 침대 옆 테이블 위에 놓인 현금 뭉치였다
"오늘은 200만 원 넣어뒀어."
서랍장 위에 놓인 봉투는 탁자 위에 놓인 향처럼 은은하게 냄새났다. 봉투를 열어보지도 않았는데도 지폐 냄새가 콧속을 간질였다. 침대 시트는 여전히 젖어 있었고, 내 눈가에선 눈물이 말라가지 않은 채였다. 그는 목욕탕으로 향하며 말했다.
"씻고 나와. 차갑게 식었어."
화장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은 조명 아래에서 유리처럼 투명해졌다. 눈이 부었다. 목덜미에는 그가 물린 자국이 붉게 남아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처음으로 생각했다. ‘이 몸은 내가 아니라 그의 지갑에 들어 있는 걸까.’
내 몸이 숫자가 되는 순간
그는 처음부터 그런 사람이었다. 돈으로는 모든 감정을 해결하려는. 생일엔 명품 가방을, 다툰 뒤엔 쇼핑몰 구두를. 화해를 위한 물질의 언어는 익숙했지만, 이번엔 달랐다. 달랐다는 걸 나도 알았다. 돈을 받고 잠자리에 든다는 건, 내 몸이 더 이상 ‘나’라는 이름의 주체가 아니라 ‘가격표’가 된다는 뜻이니까.
200만 원. 나는 그 숫자를 머릿속에서 뒤집어보았다. 내가 한 달 월급보다 많은 돈. 하지만 동시에, 내가 그를 위해 입었던 하네스 세트보다 싼 값이었다. 그는 거울 속 나를 보며 말했다.
"너는 좀 더 비싸질 수 있어."
나는 웃었다. 그가 말한 ‘비싸질 수 있어’라는 말은, 내 몸이 증권 차트처럼 오르락내리락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의 눈에 비친 나의 가치는 유동적이었고, 내 실존은 언제든 거래되고, 재평가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지희는 매주 수요일, 300만 원짜리였다
지희는 홍대 근처 원룸에 살던 그래픽 디자이너였다. 남자친구는 네 살 연상의 스타트업 CEO. 처음엔 그냥 재미로 시작했다. "오늘은 너랑 자는 대가로 300만 원 줄게." 그 한마디가 지희의 일상을 바꿔놓았다. 수요일마다 현금 봉투를 받고 나면, 지희는 고기 잡수듯 숫자를 세었다. 300만 원이면 갤러리 전시장 한 달 대여, 300만 원이면 아버지 병원비 한 달 치. 하지만 매번 현금을 세다 보면, 한 가지 의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내가 오늘밤 떠날 때, 내 몸은 다시 내 몸이 될까.’
그녀는 말했다.
“그날 밤, 그는 내 얼굴에 블러셔를 문질렀어. ‘너는 볼 때마다 더 아름다워져.’ 그러면서도 내 가슴에 손을 얹고는 대답했지. ‘이쪽은 아직 300만 원값을 못 하는 것 같네.’ 나는 그 순간 웃었어. 웃어야 했거든. 안 그러면 울음이 터질 것 같아서.”
민석은 조건을 역전했다
민석은 강남 변호사였다. 연인은 대기업 마케터였다. 둘은 연애 초반부터 서로의 몸에 가격표를 붙이는 게임을 즐겼다. 한 번은 민석이 말했다. "오늘은 네가 나한테 줄 돈, 50만 원이야." 연인이 웃으며 받아쳤다. "그럼 나는 100만 원 주면 되겠네." 그렇게 서로의 몸값을 올리는 경매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숫자가 커질수록 민석의 표정은 굳어졌다. 연인이 1,000만 원이라고 부르자, 민석은 말했다.
"이제 그만하자."
연인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싫어. 내가 더 올릴게."
그날 이후 민석은 연인의 집에 가지 않았다. 몇 달 뒤, 그가 우연히 들었던 말. 연인이 새 남자친구와 나눈 대화였다. "민석이랑은 게임이었는데, 너는 진짜야." 민석은 그 말을 듣고 문득 깨달았다. 게임이었던 건 그녀가 아니라, 자신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금기는 왜 우리를 끌어당기는가
금기의 본질은 거꾸로 돌려진 나침반이다. ‘거래하면 안 되는 것’이 ‘거래하면 더 돈이 되는 것’으로 바뀔수록, 우리는 그 욕망의 깊이를 더 절실히 느낀다. 프랑드의 ‘욕망의 경제학’은 명확하다. 금지된 대상일수록 희소성은 높아지고, 값은 비싸진다. 연인의 눈이 그토록 눈부셨던 이유는, 그 눈 속에 나라는 존재가 ‘금지된 사과’로 변신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심리학자 발리는 ‘거래의 불편함’이라는 개념을 말한다. 몸을 거래하는 순간, 사랑은 더 이상 사랑이 아니라 계산이 된다. 하지만 그 계산 속에선 이미 사랑이 있었던 것일 수도 있다. ‘얼마를 주면 네가 날 더 사랑할까’라는 물음은, 사랑이 결핍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사랑이 너무 커서 측정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날의 200만 원은 아직 서랍 속에 있다
나는 아직도 그 봉투를 열어보지 않았다. 열어보면, 내가 받은 건 단순한 돈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의 일부라는 걸 알 것 같아서. 연인은 그날 이후로 다시는 그런 말을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그날의 200만 원이 우리 사이에 아직도 살아 있다는 걸. 그리고 그는 나의 가슴에 손을 얹으며 속삭였다.
"너는 이젠 더 이상 값을 매길 수 없는 몸이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동시에 속으로 되물었다. 그럼 내가 아닌 너는, 지금 나에게 얼마나 값을 매기고 있는 거야.
가장 비싼 몸은 결국 팔릴 수 없는 몸인가, 아니면 팔리고 싶지 않은 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