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훅(Hook)
"민서야, 너 스토리 봤어?"
나는 말없이 액정을 내렸다. 새벽 1시 47분. 방금 올린 릴에 하트 하나가 붙어 있었다. 반짝이는 하트 옆에 '관계없음'이라는 단어가 시커멓게 새겨져 있었다.
그가 눌렀다.
손가락이 떨렸다. 하트는 빨갛게 읽혔다. 나는 그 하트를 누르면 안 될 것 같아서, 혹시 누르면 그와 내가 진짜로 '관계없음'이 될 것만 같아서, 액정을 꺼버렸다.
2. 욕망의 해부
'관계없음'은 말이다. 사실은 '관계 있음'의 가장 독한 형태였다.
그는 나와 끝나고 싶지 않았다. 끝낼 수 없었다. 대신 '관계없음'이라는 단어로 우리를 냉장고에 넣어두고 싶었던 것이다. 살아있는 채로.
보자. 너와 나는 아무 관계 없어. 그러니까 네가 다른 사람 만나도, 술 마시고 울어도, 내게 연락해도, 나는 아무렇지 않을 거야. 아무렇지 않을 거야. 아무렇지 않을 거야.
그가 쓴 이 반복은 너무나도 간절했다. 간절할수록 '관계없음'은 거짓말처럼 들렸다.
3. 그날 밤의 세 여자들
지아의 이야기
지아는 남자친구의 전화를 받고 있었다. 새벽 3시. "우리 관계 좀 정리하자"는 말이 끝나자마자 그는 끊었다. 지아는 얼음장처럼 차가운 전화기를 쥔 채, SNS에 들어갔다. 그의 프로필. '관계없음'으로 바뀌어 있었다.
지아는 그 '관계없음'을 스크린샷했다. 그리고 그것을 자기 스토리에 올렸다. "이제 진짜 관계없음"이라고 썼다. 47명이 봤다. 그 중 3명이 하트를 눌렀다. 그의 계정은 아니었다.
하지만 10분 후, 지아는 그 스토리를 내렸다. 그리고 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나 지금 진짜 아픈데
관계없다고 해도 좀 와줄래?
읽씹.
유진의 이야기
유진은 '관계없음'을 누르고 싶었다. 정말로. 그녀와 헤어진 남자가 아직도 그녀의 릴을 보고 있었다. 매일. '좋아요' 목록에 그의 이름이 올라올 때마다 유진은 숨이 멎을 것 같았다.
그래서 유진은 릴 하나를 올렸다. '이제 정말 관계없음'이라는 글과 함께 남자와 찍었던 사진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마지막 사진은 그녀의 새 남자친구와 찍은 사진이었다.
그날 밤. 그는 그 릴에 하트를 눌렀다. '관계없음'이라는 단어 위에.
유진은 울었다. 왜냐하면 그 하트는 아직도 '관계있음'이라는 뜻이었으니까.
4. 왜 우리는 이것에 끌리는가
'관계없음'은 금기의 문이었다.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우리는 서로를 더 깊이 파고들 수 있었다. 마치
나: 관계없음이라고 했잖아
너: 그래서?
나: 그럼 왜 매일 내 스토리 봐?
너: 그냥
나: 왜 나한테 하트 눌러?
너: 실수였어
나: 실수라고?
너: 그래. 실수로 아직도 너 생각나
이 대화는 끝나지 않는다. 끝낼 수 없다. '관계없음'은 사실 가장 강력한 관계 지속 장치였다. 우리는 그 단어를 이용해 서로를 냉동시켰다. 아무도 먼저 해동하지 못하게.
심리학자들은 이것을 '부정적 접촉 유지'라고 부른다. 끝내지 못한 관계를 계속 끌고 가는 방법. '관계없음'은 그 가장 완벽한 형태였다. 마치
나는 너를 잊고 싶지 않아서, 너를 끝내지 않기로 했어.
5. 마지막 질문
그래서 나는 다시 묻는다. 너는 왜 '관계없음'에 하트를 눌렀니? 정말로 우리가 아무 관계 없기를 바라서?
아니면, 그 하트가 눌릴수록 우리가 더 깊숙이 서로의 뼈에 새겨지기를 바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