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심리연구소 사랑과 연애의 심리학

지옥 같은 그녀의 게임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유

그녀는 나 대신 게임 속 남자 캐릭터와 밤새 채팅한다. 내가 불타는 건 단순한 질투가 아니라 더 깊은 욕망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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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 같은 그녀의 게임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유

"야, 오늘도 레이드야?"

나는 침대 끝에 앉아 그녀의 뒷모습을 노려본다. 밤 11시 47분. 어깨 위로 떨어지는 긴 머리카락 사이로 모니터 불빛이 음산하게 번쩍인다. 그녀는 대답 대신 헤드셋 마이크에 속삭인다.

네, 오늘은 꼭 클리어하자, 오빠

오빠. 그건 나를 부르는 말이 아니다.


눈이 시뻘겋게 타오르는 밤

처음엔 그냥 취미라 생각했다. MMORPG라며 새로 나온 게임에 빠졌고, 나도 함께하려 했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혼자 해야 재밌어." 그게 시작이었다.

한 달이 지나자 그녀의 패턴이 확실해졌다. 퇴근하면 바로 PC 앞. 저녁은 대충 도시락. 샤워는 생략. 게임 속 '길드원'들과 밤새 통화. 특히 '진우오빠'라는 캐릭터와는 뭔가 달랐다.

진우: 오늘 보스 잡으면 반지 떨어질 확률 80%야
그녀: 오와아아아 나도 받고 싶어요♥
진우: 내가 다 줄게, 우리 민주만 잘 따라와

우리 민주. 나도 모르게 손에 든 컵이 부서질 뻔했다. 그녀는 내 여자친구인데, 온라인에선 다른 남자의 '우리 민주'였다.


게임 속 사랑, 현실의 지옥

"야, 오늘은 몇 시에 끝나냐"고 물었더니 그녀가 뒤돌아 봤다. 눈가에 살이 꺼져있고, 피부는 뜨거운데 눈은 차가웠다.

잠깐만, 지금 중요한 거야

그녀는 나를 본 게 아니었다. 모니터 속 진우를 보며 말한 거였다. 나는 그녀의 손에 있던 에너지드링크 캔을 쥐었다. 3시간째 같은 자리. 화장실조차 안 간 것 같다.

며칠 전엔 더했다. 내가 잠에서 깼을 때 4시 23분. 침대 옆은 차가웠다. 거실에 나가보니 그녀는 헤드셋을 벗고 있었다. 귀걸이가 빨간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입술도.

왜 안 자?
아... 음성 채팅 끊고 왔어

음성 채팅 끊고 왔어.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았다. 누군가와 끊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나는 그녀의 휴대폰을 열어봤다. 디스코드 메시지가 수백 개. '진우97'이 보낸 마지막 메시지:

[오디오 2분 34초] 목소리 진짜 섹시하다...

다른 커플들은 다 그래요

사내 동아리에서 만난 지환이 얘기했다. 그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내 여친도 게임 중독이야. 근데 사실 나는 그게 좋더라

뭐?
모르겠어. 내가 일할 때 걔가 게임하는 모습 보면... 뭔가 안심되고. 내가 아닌 곳에 열정 쏟는 게

나는 지환이의 눈을 봤다. 그 눈에도 같은 불꽃이 있었다. 질투인지, 아니면 더 깊은 욕망인지.

지환이의 여자친구 서연은 '로스트아크'에 빠져 있었다. 36시간째 접속 중. 지환이는 그녀가 잠깐 자리 비운 사이에 PC를 봤다고 했다. 캐릭터 이름 아래에 떠 있던 멘트:

♡진우형 나만 바라봐요♡

지환이는 웃었다. "진우가 나랑 이름이 같대. 재밌지?" 그가 웃는 동안 손은 떨렸다. 이건 단순한 질투가 아니었다. 우리는 게임 속의 그녀를 통해 뭔가를 얻고 있었다. 현실의 우리를 차버릴 수 있는 그녀의 모습. 그 손에 잡히지 않는 무언가가 우리를 더 뜨겁게 만들었다.


나는 왜 여기 서있는가

심리학자에게 물었더니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불안함을 즐기고 있어요." 불안함을 즐긴다?

맞는 것 같았다. 그녀가 게임에 빠질 때 나는 의도적으로 더 방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관찰했다. 그녀가 다른 남자들과 웃고, 때로는 음성으로 속삭이는 걸 들으며 나는 뭔가를 느꼈다. 괴로움? 아니. 흥분. 내 여자친구가 다른 세계에 있다는 현실이 나를 살아있게 했다.

지환이도 비슷했다. 그는 서연이 게임 속 이벤트에 참여할 때 마다 카톡을 보냈다. '언제 끝나냐', '밥 먹었냐' 같은 평범한 질문. 하지만 그건 단순한 체크가 아니었다. 서연의 대답이 올 때까지의 30초, 1분, 2분 사이의 간격을 재며 그는 자신이 여전히 통제권을 갖고 있다고 믿으려 했다.

우리는 사실 그 불안함을 원했다. 그녀들이 게임 속에서 더 자유로워질수록, 우리는 더 강렬한 무언가를 느꼈다. 질투 자체가 우리의 새로운 연애 언어였다.


아직도 그녀는 모르고 있다

오늘도 그녀는 레이드 중이다. 나는 거실에서 그녀의 뒷모습을 본다. 헤드셋 속에서 들리는 목소리들. 진우, 성민, 혜진... 그녀는 그들과 함께 가상의 성을 향해 달린다.

나는 포켓몬고를 켠다. 가짜로. GPS를 조작해 강남역 근처 유령 포켓몬 처럼 움직인다. 그녀는 내가 어디 있는지 묻지 않는다. 나도 알려주지 않는다. 둘 다 이 거리를 즐기고 있다.

어젯밤 꿈에서 그녀는 게임 속으로 완전히 빨려들어갔다. 모니터 너머로 손을 뻗었지만 닿지 않았다. 그런데 왜일까. 그 꿈에서 나는 웃고 있었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지키려 하고 있나. 그녀를? 아니면 자신이 느끼는 이 지독한 불안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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