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몸만 섞고 나면, 넌 꼭 먼저 떠날 거야, 그렇지?”
나는 그의 뒷목에 숨을 뿜으며 물었다. 민수는 대답 대신 이마에 살짝 입을 맞추고는 샤워실로 들어갔다. 물소리가 요란하게 흘렀다. 문 앞에 놓인 그의 청바지 주머니에서 휴대폰이 진동했다. 나는 고개를 돌렸지만 이미 눈이 먼저 갔다.
‘그래, 나도 건조한 연애 따위엔 관심 없어.’
스스로에게 반복했던 말이었다. 하지만 그날 밤 민수는 샤워 후에도 침대에 누워 끝없이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아침 일곱 시, 그는 말없이 종이 한 장을 남기고 사라졌다.
‘몸만 원했는데, 왜 이름을 불러봤을까.’
몸이 먼저였던 순간
우리는 첫 만남부터 침대 위였다. 클럽 화장실 앞에서 마주쳤을 때, 민수는 농담처럼 말했다.
“네가 먼저 고개를 돌렸으니까, 오늘은 네 차례야.”
그 말에 왜 그렇게 홀렸는지 모르겠다. 아마, ‘책임질 생각 없음’이 선명히 적힌 눈빛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 눈빛에서 나 자신을 투영했다. 연애 피로증 가득한 어른의 모습. 그래서 그날 밤, 우린 키스도 생략하고 벗었다.
아침에 사라진 이름표
그가 사라진 지 이틀째, 나는 여전히 안대를 하지 못했다. 침대 옆 테이블 위에는 그가 쓰던 임시 키카드와 함께 메모 한 장이 있었다.
미안, 나는 여행 중이라 몸만 가능해.
유쾌했어. 잘 있어.
잘 있어. 둘만의 비밀 언어에서 ‘이제 연락 끊음’이라는 뜻이었다.
나는 그 메모를 오려내 냉장고에 붙였다. 매일 밤 맥주를 마시며 그 글씨를 읽었다. ‘여행 중이라’는 말이 왜 이렇게 속이 시렸을까. 여행이라는 말은 곧 ‘영원한 타향’이니까.
유령되는 살결
사흘째, 샤워를 마치고 거울 앞에 서면 그의 손길이 스쳤던 가슴 쪽이 간지러웠다. 제일 먼저 사라져야 할 흔적이 제일 오래 남는 법. 나는 그 자리를 긁었다가 문득 손을 내렸다. 이건 어떤 가려움도 아닌데.
그날 저녁, 나는 자취방 아래 편의점에서 같은 맥주를 샀다. 계산대에서 20대 초반 여자애가 나지막이 말했다.
“오늘은 혼자예요?”
어깨를 으쓱했지만 대답은 나왔다.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남는 거죠.”
다른 여자들의 잔해
그 뒤로 일주일, 나는 같은 클럽에 갔다. 욕망의 잔해를 치우러. 그곳에서 유나를 만났다. 그녀는 민수와 지난달까지 엮였다며, 입꼬리를 찌그러뜨렸다.
“그 사람, 키스할 때 눈 감지 않잖아.”
술잔이 떨렸다. 나는 민수가 눈을 감고 키스한 날이 단 하루도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눈을 뜬 채 키스하는 사람은 누군가를 똑바로 보지 않는다.
유나는 그 말을 끝으로 화장실로 사라졌다. 나는 그녀의 잔을 들이켰다. 같은 맛, 같은 쓴맛.
왜 우리는 ‘몸계약’에 서약할까
심리학자들은 ‘승인되지 않은 욕망’이라 부른다. 명백히 실패할 관계에 손을 내미는 이유. 그건 단순한 자해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그 실패를 미리 알면서도, 상처를 선택한다. 왜냐하면 상처는 적어도 감정의 증거니까.
- 몸만 주고받는다는 건, 결국 ‘내가 거절당해도 괜찮아’라는 말이 된다.
- 하지만 거절은 몸이 아닌, 이름을 불러주지 못한 데서 온다.
- 그래서 우리는 먼저 떠난다. 상대가 떠나기 전에.
아직도 뜨거운 자국
나는 오늘도 그가 남긴 메모를 꺼내어 발바닥에 비벼본다. 뒤틀린 일이지만, 그 글씨가 닿는 순간 아직도 화끈거린다. 그리고 문득 든다.
‘나도 사실은 몸만 원한 게 아니었을까.’
마지막 질문
왜 우리는 ‘이름 없는 몸놀이’에 서명하면서도, 결국 이름을 속삭이고 싶어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