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촌의 시신이 관 속에 들어가는 순간, 유민이 내 앞을 가로막으며 쏘아붙였다. "너는 왜 아무런 표정도 안 해?" 그녀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주변 사람들이 돌아보게 할 만큼 차가웠다.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민망함이 아니라 오히려 희열이 몰려왔다.
아무도 모르는 승자의 미소
우리는 누군가 죽을 때만 진짜 얼굴을 드러낸다. 상복 입은 것들 사이에서 눈물은 연막탄이다. 진짜는 *‘이제 너희가 어떻게 변하냐’*라는 관음이다.
‘죽음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는 말은 거짓이다. 죽음은 오히려 살아남은 자들에게 변태적인 자유를 허락한다.
유민은 삼촌 살아생전, 나를 ‘변변찮은 XX’이라 불렀다. 취업도 못 한 채 혼자 산다고, 남자도 없다고. 그런 그녀가 지금 내게 창피를 주려 한다. 하지만 죽음이야말로 내 편이었다.
상주라는 직책의 사탕발림
삼촌의 장례식, 나는 상주였다. 유민은 조카였다. 상주는 말 그대로 *‘이 죽음을 책임지는 자’*다. 조카는 그저 꽃다발 하나 들고 오면 되는 게스트일 뿐.
나는 계속해서 고개 숙이고 있었다. 수의원장이 "상주님, 이만 들어가셔도 됩니다"라고 말했을 때도, 나는 나지막이 "아직도 손님이 남아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그 순간, 유민이 눈을 흘겼다.
‘저 XX, 죽음을 이용해 위선 떨고 있어.’
그녀의 속눈썹이 떨렸다. 그 떨림이, 내가 원했던 건가.
두 번째 시신, 두 번째 기회
며칠 뒠, 엄마가 "사촌 언니 결혼식 갔다 왔냐"고 물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장례식에서나마 유민이 내게 한 발 뒤처졌다는 사실은, 절대 말할 수 없었다.
그녀의 인스타그램을 들어갔다. 웨딩사진 속 유민은, 꽃다발을 받으며 울고 있었다. 나는 그걸 보며 웃었다. 그 눈물, 장례식 때의 눈물과 똑같아.
금기의 사각지대
정신분석학자 슐츠는 말했다. *‘가족은 서로를 가장 잔인하게 죽이는 권력 게임장이다’*라고. 장례식이라는 공간은 그 게임의 세트장이다. 누가 상주가 되고, 누가 조카가 되는지. 누가 눈물을 흘리고, 누가 조용히 서 있는지.
나는 유민에게 창피를 주지 않았다. 차라리 그녀가 느끼는 수치심을, 내가 삼켰다. 왜냐하면 수치심은 가장 오래 가는 복수다.
마지막 장면
며칠 뒤, 유민이 DM을 보냈다. "장례식 때... 미안." 나는 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결코 알 수 없다. 내가 그녀를 용서한 게 아니라, 더 큰 걸 얻었다는 걸.
당신은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당신이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이었는지 알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