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도 나를 구하려 들어?”
화장터 대기실. 핸드폰이 진동했다. ‘윤수진♥’ 떠오르는 이름이 심장을 쥐녁이다가 놓았다. 나는 고개를 숙여 차단 버튼을 눌렀다. 차가운 ‘차단됨’ 문구가 눈앞에 떴을 때, 아버지의 관이 들어가는 화구장으로 한 발짝 더 다가갔다.
이제는 내가 선택한다.
숨겨진 동행자
수진과 나는 열세 살 동안 ‘절친’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다녔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의 엄마, 아빠, 수학 성적, 생리통까지 공유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병간호가 길어지던 어느 날, 그녀는 내가 가장 듣기 싫은 말을 건넸다.
너는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니까
어른들도 다 알 거야, 수진이는 천사 같다더라
그때부터였다. 나는 그녀의 온기를 끌어안으며 시들어가는 아버지를 돌봐야 했다. 그리고 그녀는 연례행사처럼 ‘최선을 다하는’ 나를 찍어 올렸다. 사진 속 나는 감쪽같은 미소를 지었지만, 속으로는 병실의 냄새를 뒤집어쓴 채 허우적거렸다.
카메라 뒤의 손
작년 3월, 아버지의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을 때다. 수진은 중환자실 앞 복도를 배경 삼아 우리 둘을 촬영했다. 엄마는 피곤에 지쳐 꼼짝도 못했다. 나는 사진 속 우리 둘 사이를 비집고 들어간 그녀의 손길이 느껴졌다.
이 장면을 누가 더 슬프게 보일까?
그녀는 날마다 ‘힘내’라는 멘트와 함께 사진 한 장을 올렸다. 댓글은 쌓였다. ‘수진이 진짜 착하다’, ‘사랑이 넘치네’. 나는 그 착함의 배경이 오직 내 죽어가는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관 앞에서 차단당한 이유
아버지는 47일 만에 세상을 떴다. 장례를 준비하는 동안 수진의 카톡은 잠들지 않았다.
장례식장은 내가 알아서 할게
너는 그냥 울면 돼
내가 다 예쁘게 정리해줄게
나는 그녀의 ‘예쁘게’라는 단어가 싫었다. 관 뒤에 놓일 화환이 몇 송이나 되는지, 조문객 앞에서의 나의 눈물 각도까지 그녀의 작품이 될 거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고의로 시간을 뒤로 미뤘다.
장례식장 사무실. 나 혼자만 남겨두고, 화장 절차를 확인하러 간 사이. 핸드폰을 꺼냈다. 윤수진, 차단. 순식간이었다. 그녀는 나중에 현수막 사진을 찍으러 왔다가 내가 없는 것을 확인했을 테다. 전화가 쉼 없이 울렸겠지. 나는 시신이 들어가는 화구장 문 앞에서, 마침내 숨을 크게 내쉬었다.
상실의 자리를 누가 차지할까
우리는 상실 앞에서 언제나 ‘최선’을 강요받는다. 누군가의 눈물이 트라우마 쇼가 되는 순간도 있다. 수진이 원했던 건 단순한 위로가 아니었다. 그녀는 내 눈물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을 것이다. ‘내가 없으면 너는 무너진다’는 증거를.
사람들은 종종 타인의 고통을 무대 삼아 자신을 조명한다. ‘나는 네 편이다’라는 말 속에는 ‘그러니 너도 나를 절대 버리지 마’라는 미묘한 협상이 숨어 있다. 나는 그 협상 테이블에서 발을 뺐다.아버지의 죽음이 내 인생 최대의 약점이라면, 그 약점을 유통하는 건 이제 내 몫이 아니라는 선언이었다.
누가 조문객의 주인이 될 것인가
화장이 끝난 뒤, 유골함을 받아 들고 돌아오는 길. 수진의 이름은 여전히 차단 목록에 남아 있었다. 나는 그녀가 느낄 충격을 상상했다. 뉴스처럼 번져갈 소문. ‘그 애가 성격이 좀...’ 혹은 ‘얼마나 힘들었으면...’ 둘 중 하나로 귀결되겠지.
그러나 나는 한 가지를 깨달았다. 내가 울지 않아도, 장례식은 끝난다.
연약한 자리에 선 사람이 꼭 약자는 아니다. 때로는 상실 앞에서 가장 냉정한 선택을 하는 이가 오히려 힘을 얻는다. 나는 아버지의 죽음을 이용해 누군가와 경쟁하지 않기로 했다. 단, 그 상실의 주인공이 내가 되지 못하게는 막았다.
너도 누군가를 차단해야 할 이유가 있었을까
장례식 뒤풀이에서, 나는 수진이 없는 테이블에 앉았다. 조카가 물었다. “이모, 휴대폰 안 받아도 돼?”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때부터였다. 나는 더 이상 ‘최선’을 다해야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단순히 살아남은 사람이었다.
지금, 당신에게 던지는 마지막 질문이다.
당신은 언제, 어떤 이름을 차단 버튼 앞에 두었나. 그건 단순한 메시지 차단이었는가, 아니면 네 상실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선언이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