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 올라오지 마.”
그녀는 마치 턱끝까지 차가운 물을 들이켰다 뱉듯 말했다. 내 손이 이불 위로 살금살금 기어가려는 찰나, 유리창에 박힌 겨울처럼 단호했다.
세 번째 데이트였다. 아니, 벌써 네 달째였다. 영화관 팝콘 냄새, 소주잔이 부딪치는 소리, 지하철 막차를 놓치고 맞은 택시 뒷좌석 키스만 계속됐을 뿐, 침대의 끝자락조차 내게 허락된 적 없었다.
숨겨진 뜨거움은 가장 차갑게 타오른다
그녀는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머리카락 사이로 흘러나온 냄새는 니치 향수 ‘블랙 아프터눈’이었다. 매번 똑같은 향. 내가 입맞춤할 때마다 코끝에 닿는 그 냄새는, 마치 까만 실크 드레스를 두른 방화벽 같았다.
‘이건 끝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고 누가 정했지?
나는 너무 빨리 가고 싶은 걸까, 아니면 그녀는 늘 너무 늦게 올까.
나는 그녀의 무릎을 어루만지는 척 손가락을 살짝 흔들었다. 촉감은 마치 눈 위에 올린 가죽장갑 같았다. 따뜻해 보이지만 살짝만 오래 두면 얼음처럼 차가워지는.
“민서, 나... 좀 들어가도 돼?”
“여기, 소파 말고 침대.”
그녀는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 “아직 난... 데리러 올 사람이 있어.”
그녀의 차가운 맛
첫 사례. ‘유진’이라는 여자를 만났던 32세 남자, 준혁.
“우리는 매주 일요일 점심을 먹었다. 레스토랑 앞에서 기다릴 때면, 그녀는 늘 한 발짝 뒤에서 나를 바라봤어. 손은 잡았지만, 키스만 하면 입술이 미끄러져서 도망가듯 뒤로 넘어갔지.”
그러다가 일곱 번째 주, 유진은 문득 준혁의 손목을 잡고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다.
거실 소파. 그녀는 준혁의 셔츠 단추를 하나씩 풀면서 말했다.
“여기까지만. 아래는 내가 아니야.”
준혁은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유진은 눈을 감고 준혁의 가슴에 입을 맞췄다. 뜨거운 숨을 뱉으면서도, 아래로 내려가는 건 절대 허락하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 유진은 연락을 끊었다. “당신이 내 온도를 맞추지 못했어.” 단 한 줄이 전부였다.
두 번째 사례. ‘시은’과 ‘도현’.
도현은 회사 동아리 선배였다. 술자리에서 술래잡기 하듯 몇 달째 시은의 손만 잡고 있었다.
“우리는 밤새 잠을 안 자고 영화를 봤어요. 시은은 이불 속에서 발끝으로 내 종아리를 간질였지만, 정작 허리를 잡으려 하면 ‘피곤해’ 한 마디로 죽였죠.”
그러다가 열번째 만남, 시은은 도현에게 작은 상자를 건넸다. 안에는 새하얀 손수건과 함께 쪽지가 들어 있었다.
‘나는 네가 필요 없는 곳까지 가고 싶지 않아. 너는 내가 아픈 곳까지 만지고 싶은가 봐.’
도현은 그날 이후로 시은을 다시 부르지 못했다.
왜 우리는 차가운 문 앞에 서 있다가도 뜨거운 불길에 뛰어드는가
인간은 원래 거절당하는 맛에 중독된다. 심리학자 윌슨은 말했다. ‘금기의 문턱 앞에서 흔들리는 욕망’은 뇌의 도파민을 폭발시킨다고.
결국 우리가 원하는 건 상대가 아니라, ‘아직 얻지 못한 나 자신’의 일그러진 실루엣이다.
그녀가 차갑게 굴면 굴수록, 나는 더 뜨거워진다. 나의 손끝은 그녀를 닿으려 하지, 나를 달래려 하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문 앞에서 영영 열리지 않을 열쇠를 돌리며, 자기만의 불꽃을 지핀다.
너는 지금 누구의 침대 끝에 서 있니
네, 바로 너.
차가운 거절을 품고 돌아서는 그 밤, 네가 진짜로 원한 건 그녀의 몸이었을까, 아니면 네가 끝내 들어가지 못한 그 방 한복판이었을까?